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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영 Oct 26. 2024

구우일모, 터럭 같은 삶을 살고 싶진 않지만

터럭도 나름 의미는 있겠지?



  중국의 역사서 <사기>를 쓴 사마천에게는 아래와 같은 일화가 있다.

  한나라 무제 황제 때의 일이다. 황제는 흉노가 국경을 침범하고 노략질을 일삼자, 장군인 이릉으로 하여금 5천 명의 군사를 내어주고 흉노를 치라고 명했다. 그러나 흉노의 군사 수가 몇 배나 더 많은 데다가, 이릉의 군사는 보병인데 반해 흉노는 기마병이 대부분이어서 싸우기가 쉽지 않았다. 이릉은 끝까지 싸웠으나 결국 패배하고 말았는데, 흉노는 적장인 이릉의 용기와 무예를 높이 사서 죽이지 않고 후대했다.

 이 소식을 알게 된 무제가 분노하여 이릉의 일족들을 모두 참형하라고 명했다. 황제의 성정이 사나워 말 한마디 못하고 있던 신하들 사이에서 사마천이 홀로 말했다.

“이릉은 목숨이 아까워 투항할 만한 인물이 아닙니다. 게다가 소수의 보병으로 수만의 오랑캐와 싸우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아마도 그가 흉노에게 투항한 것은 훗날을 도모할 기회를 얻으려고 한 것이 아니겠는지요?”

 그러나 무제는 사마천의 말에 더 진노하여 그를 옥에 가두고 궁형을 내렸다.   

궁형은 생식기를 잘라 버리는 형벌로,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낫다고 말 할 정도로 그 당시에는 가장 수치스러운 형벌로 여겼다.

 그렇게 궁형을 받고 겨우 목숨을 건진 사마천의 처지는 죽는 것보다 나을 것이 없을 정도로 비참했고,  친구인 임안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의  심정을 토로했다.

 “이 형벌이 치욕적이라고 하여 사형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아홉 마리의 소 중 터럭 하나 없어지는 것일 뿐이니, 나와 같은 자는 땅강아지나 개미 같은 한낱 미물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세상 사람들은 이런 수치스러운 일을 당하고도 죽지 않으니 나를 졸장부라고 여길 것이야.”

 친구에게 이와 같이 편지를 쓸 정도로 고통스러웠지만, 사마천은 죽을 수 없었다. 그것은 아버지인 사마담이 임종 때 중국의 역사서를 완성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고, 그 유언에 따라 역사서를 집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훗날 사마천은 역사서인 <사기>를 완성했고, 한 무제가 두려웠던 나머지 그 책은 그의 외손자에 의해 세상에 나오게 된다.

 

 이 이야기에서 유래한 사자성어가 바로 ‘구우일모’이다. 구우일모는 아홉 마리 소 가운데 털 하나라는 뜻으로 많은 것 중에 가장 작고 보잘것없는 것을 가리킬 때 쓰는 성어이다.


  위 고사처럼 사마천은 끝내 살아남아 역사서인 <사기>를 완성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고사성어의 대부분이 이 <사기>에서 비롯된 것을 보면 사마천은 결코 터럭 같은 삶을 살지 않았다.  

 <사기>를 완성해냄으로써 보잘것없는 삶으로 끝나고 싶지 않은 한 사람의 꿈을 이루어낸 것인 셈이다.


  나도 모르게 요즘의 나는, 시간이 아깝다는 말을 많이 한다.

 문득 내가 왜 그렇게 ‘시간이 아깝다’는 말을 많이 하고 있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오랜 투병 때문이었을까?

 그 당시 제일 많이 한 생각이 ‘이대로 죽는다면 너무 초라하게 내 인생이 끝나버리는구나’라는 것이었으니까.

 그래서 그때의 시간을 보상받고 싶은 나머지, 나는 지금 무엇이라도 이루어야 할 것 같고, 무엇이라도 남겨놔야 할 것 같은 생각에 사로잡힌 것 같다.

  그래서인지 요즘의 나는 무엇인가에 쫓기는 것처럼 생활하고 있다.

 틈만 나면 글을 쓰고,  무엇인가를 배우고, 모임에 가입하고, 연수를 신청한다.

 오늘도 연수를 듣겠다며 두 시간 거리의 지역을 다녀와서 시간을 소중히 썼다고 뿌듯해하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아까운 시간’으로 치부해 버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까운 시간은 아닐 텐데, 무엇인가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보잘것없는 삶이 되고 싶지 않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나를 너무 혹독하게 몰아세우는 것은 아닐까? 그런 유의미한 목적에만 몰두하다가 소소한 행복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끼는 사람들과 나누는 소소한 대화, 그 사이에서 주고받는 마음, 가만히 혼자 사색하며 느끼는 안온함, 그 시간들이 가진 의미를 마치 걸리적거리는 거스러미처럼 여기며 모두 걷어내려고 하는 건 아닐까?


   사마천처럼 목적의식 하나로 힘든 삶을 버텨내며 큰 꿈을 이룬 사람은 사람은 당연히 위대하다. 그리고 닮고 싶다. 나도 터럭같이 살다가 조용히 사라지는 먼지같은 인생을 살고 싶진 않다. 나라는 사람이 이 지구에서 살다가 갔노라고, 나를 기억할 수 있는 발자취는 남기고 싶으니까.

 

 하지만,

 조금 바꿔보려고 한다.

 성공이나 성취도 좋고,

 갓생러도 좋지만...

 성취 강박은 조금 내려놓고,

 수많은 털 속에 숨은 한 가닥 같은 작은 삶도 나름의 가치가 있음을 찾아보려고 한다.


 그렇다면 모든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는 것만이 옳은 삶은 아니라고 여겨도 되는 거겠지?

 조금 보잘것없어도 내가 의미를 둔다면 그 삶 또한 빛나는 삶이 맞는 거겠지?

누가 터럭을 알아주지 않더라도,  제 스스로가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긴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삶일 수 있는 거겠지?


구우일모(九牛一毛) :아홉 구, 소 우, 한 일, 털 모, 아홉 마리 소 중에 털 하나, 많은 것 중에 가장 작고 보잘것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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