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사람
사기(史記)의 평원군전(平原君傳)에 아래와 같은 이야기가 있다.
중국 전국시대 일이다. 조나라가 진나라의 공격을 받자, 혜문왕은 제 동생이자 재상인 평원군을 초나라에 보내어 병사를 보내 줄 것을 요청하기로 했다. 평원군은 자신의 집에 머무는 3000여명의 식객 가운데 함께 초나라에 갈 20명의 수행원을 뽑았는는데, 한 명을 뽑지 못한 채 고심했다. 이때 모수라는 식객이 자신을 데려가 달라며 평원군에게 청했다.
이에 평원군이 말했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마치 주머니 속의 송곳 끝이 밖으로 나오듯이 눈에 띄는 법이오. 그런데 내 집에 온 지 3년이나 되었다는 그대는 단 한 번도 이름이 드러난 일이 없지 않소?”
그러자 모수가 대답했다.
“나리께서 지금껏 저를 단 한번도 주머니 속에 넣어 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에 주머니 속에 넣어 주신다면 끝 뿐이 아니라 자루까지 드러내 보이겠습니다.”
모수의 재치있는 대답에 만족한 평원군은 모수를 수행원으로 뽑아 초나라에 함께 갔다.
대화를 시작한 지 한나절이 지나도록 평원군이 초나라를 설득하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모수가 초나라 왕과 평원군이 앉아 있는 곳으로 뛰어올라가 한편으로는 칼자루를 잡고 초왕을 협박함과 동시에 뛰어난 언변으로 초왕을 설득하였고, 모수의 활약으로 초나라로부터 구원군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위 이야기에서 유래한 사자성어가 ‘낭중지추’이다. 이후로 ‘낭중지추’는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사람들에게 알려진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그것이 일에서든, 사람과의 관계에서든 남들로부터 어떤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인정받는 일은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받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게 자신이 가치있는 존재라는 것을 확인받을 때 우리는 행복이나 희열감을 느낀다.
그런데 남들에게 제 가치를 인정받고자 하는 방법에는 차이가 있다.
어떤 이는 끊임없이 탐구하며 자신의 내면의 역량을 키우는 것에 초점을 두는 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남들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사람들이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는 지에 초점을 둔다.
곧, 자신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내면에 있느냐 외면에 있느냐의 차이이다.
남들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것에만 목적을 두는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에 허덕인다.
어떤 사회, 어떤 조직, 또는 어떤 사람에 따라 나의 필요와 쓰임은 늘 변할 수밖에 없고, 남들에게 이리저리 휘둘리다 쓰임이 다하면 빈 껍데기밖에 남지 않게 된다.
관계 맺기에 서툰 아이들이 그렇다. 친구로서 인정받고 싶어서, 또는 자신이 좋아하는 친구와 친해지고 싶어서 그 친구가 원하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물질적인 공세로 친구를 붙잡으려고 하거나, 친구의 무리한 요구도 거절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렇게 노력해도 도리어 제 존재를 외면당하거나 상처를 입는 경우가 더 많다. 사람은 누구나 매력적인 이에게 끌리기 마련이고, 자신의 주도권이 남에게 있는 한 결단코 매력적인 사람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남들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남들의 시선에 좌우되지 않고, 내면의 가치를 다듬는 사람은 자연스레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된다. 주머니 속에 숨어 있어도 드러나는 뾰족한 송곳처럼.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들이 숨길 수 없는 매력이 뿜어나오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을까?
아마도 아이가 제 자신을 귀하게 여기도록 하는 것이고, 그것을 위해서 부모는 조건없는 사랑을 주는 것이 우선이지 않을까?
똑똑해서, 예뻐서, 착해서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매 순간 확인시켜줘야 한다.
그렇게 자란 아이는 자신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알고,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은 절대 자신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내면의 목소리가 원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고 끊임없이 노력할 것임이 분명하다.
그렇게 자란 우리의 아이들은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아무리 숨어있어도 저절로 빛을 발하는 멋진 어른으로 성장하지 않을까?
囊中之錐(주머니 낭, 가운데 중, 어조사 지, 송곳 추) : 주머니 가운데의 송곳,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숨길 수 없음
毛遂自薦(털 모, 따를 수, 스스로 자, 천거할 천) : 모수가 자신을 추천함. 자기가 자신을 추천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