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의 반려견이 죽었다. 반려견의 이름은 칸이다. 칸은 겁이 많고 얌전하고 온순했다. 하지만 용감하기도 했다. 산 길을 산책하던 중에 들개들을 만났는데, 들개가 제 주인에게 다가오자 생전 처음 크게 짖어댈 정도로 제 주인을 위해 용기를 낼 수 있는 놈이기도 했다.
칸은 죽기 석 달쯤 전부터 조금 달랐다고 한다. 본래 애교가 없어서 먹을 게 아니면 주인이 불러도 시큰둥했던 놈이 갑자기 동생을 졸졸 따라다니거나, 뜬금없이 제 주인의 얼굴을 한참 동안 빤히 쳐다보곤 했다고 한다.
아마도 제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본능적으로 알았던 게 아닐까? 레트리버가 13년을 넘게 살았으니, 누구는 ‘호상’이라고 말했다나? 세상에 인간이고 동물이고 간에 호상이 어디 있겠는가? 죽음은 언제나 슬픔을 동반하니.
동생은 여전히 펫로스로 힘들어하고 있다. 동생의 집에 방문하면 두껍고 커다란 꼬리를 탁, 탁, 탁 흔들던 그 모습을 떠올리니, 나조차도 마음이 괜히 물 먹은 솜이불처럼 가라앉는 것 같다. 다행히도 칸과 형제인 심바가 지금 동생의 곁을 지키고 있지만, 심바마저 동생의 곁을 떠나면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그러다가 문득 인간에게 개는 도대체 어떤 존재일까?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개가 등장하는 사자성어를 생각하니 가장 먼저 '견마지로'가 떠오른다.
'견마지로'는 개나 말 정도의 하찮은 노력이라는 뜻으로, 윗사람에게 충성을 다하는 자신의 노력을 낮추어 부르는 말이기도 하다.
삼국지에는 삼고초려하며 찾아간 유비를 향해 제갈량이 아래와 같이 말한다.
"將軍旣不相棄 願效犬馬之勞"
"장군께서 처음부터 서로 버리기를 원하지 않으신다면 개와 말의 수고로움을 바치기를 원합니다."
(장수 장, 군사 군, 이미 기, 아니 불, 서로 상, 버릴 기, 원할 원, 바칠 효, 개 견, 말 마, 어조사 지, 수고로울 로)
심지어 한자에 들어가는 개(犬)의 뜻은 더하다. 보잘것없거나, 심지어 음식으로도 여긴다. 우리가 제일 많이 하는 욕에조차 개가 들어간다.
伏(엎드릴 복) : '사람 인'과 '개 견'을 더한 글자로, 개가 사람 옆에 바짝 엎드려 복종하고 있는 모습. 엎어질 듯이 매우 더운 날이라고 하여 복날을 가리킬 때 쓰는 한자이기도 하다.
器(그릇 기) : '입 구' 네 개와 '개 견'이 더한 글자로, 개고기를 그릇에 담아 먹는다는 의미(개가 그릇을 지킨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음)
然(그러할 연) : '개 견', '고기 육', '불 화'를 합하여 개고기를 불에 그슬리는 것처럼 당연하다는 뜻(너무 잔인하지만 고대라는 걸 감안해 주시길.)
珖(미칠 광) : '왕 왕'과 '개 견'을 합한 글자로, 광견병이 걸린 개를 뜻함.(나는 왕이 개처럼 행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쳐서 제일 무서운 인간이 바로 임금 아닐까?)
여하튼 인간에게 개라는 존재는 한자가 만들어지던 그 옛날부터 인간과 늘 가까이 있었고,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을'이다. 때로는 먹이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조롱을 뜻하는 비유로 사용되기도 하고,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존재를 뜻하기도 한다.
오랫동안 인간의 곁에 살았음에도, 고작 그런 대우를 받는 개의 입장에서는 화가 날 일이 아닐까? 그럼에도 개는 인간을 향해 무조건적인 애정을 쏟고, 심지어 목숨을 버릴 정도로 헌신적이다.
임실지역에 ‘오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김개인이라고 하는 사람이 개를 한 마리 키우고 있었는데, 개를 사랑하여 어디든 함께 데리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김개인은 장에서 친구들을 만나 술을 진탕 마셨다. 간신히 집으로 향했지만, 취기를 이기지 못하고 잔디밭에 쓰러져 그대로 잠들고 말았다. 그런데 하필 근처의 들에서 불이 나기 시작했고, 김개인이 쓰러진 곳까지 불이 옮겨 붙었다. 개는 아무리 짖어도 주인이 깨어나지 않자, 냇가의 물을 제 몸에 적셔 불이 붙은 잔디를 뒹굴며 불을 끄기 시작했다. 그렇게 수차례 반복한 끝에 잔디밭에 붙은 불을 껐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김개인이 잠에서 깨어 보니, 개가 불에 그을린 채 죽어 있었다. 김개인은 그 자리에 개의 무덤을 만들어 주고 지팡이를 무덤 앞에 꽂아두며 개의 희생을 기렸다.
우리는 늘 사랑받기를 원한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녹록지 않아서, 외면당하거나 소외되는 일이 허다하다. 무엇인가를 얻었다면, 나의 무엇인가를 내놓을 생각도 해야 한다. 세상에서 무조건적이고 일방적으로 내게 베푸는 이를 만나기란 쉽지 않으니까.
그런데 개라는 존재는 도대체 왜 그런 걸까? 때리고 미워해도 주인에게만큼은 좋다며 꼬리를 흔든다. 화수분처럼 고갈되지 않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끊임없이 퍼붓는다.
그래서일까? 세상살이에 지치고, 사람과의 관계에 상처 입은 인간에게 개라는 존재는 완벽한 치유사 그 자체인 것이다. 개만큼 조건 없는 사랑을 주는 존재가 또 있을까? 그래서 내 소설에 개가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무조건적이거나 희생적인 사랑을 뜻하는 의미로 등장시키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