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의 철학책 <장자>에 공자에 관한 일화가 있다.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는데, 길가에서 똥을 싸는 사람을 보았다. 그 광경을 본 공자는 제자를 시켜 똥을 싼 사람을 잡아오게 하고는 크게 꾸짖었다.
“사람이 개나 소, 까마귀 같은 금수가 아닌데, 어찌 가리고 못 가릴 것을 구별하지 못하느냐? 길가에 똥을 싸다니, 너는 사람이냐 짐승이냐?”
그러자, 그 사람은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며 도망쳤다 한다.
얼마 후, 이번에는 길 한가운데서 똥을 싸는 사람을 만났다. 그러자 공자가 제자에게 길 가운데서 똥을 싸는 사람을 피해 가자고 말했다.
제자들이 궁금해하며 물었다.
“스승님, 어찌 길 가운데 똥을 싸는 자는 피해 갑니까? 저놈은 길가에서 똥을 싼 사람보다 더 나쁜 놈이 아닙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저 자는 양심도 없는 자이다. 길가에 싼 자는 자신의 행동을 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람이므로 가르칠 수 있지만, 아예 길 가운데서 싸는 자는 부끄러워하는 마음조차 없는 자이니, 어떻게 가르칠 수 있겠는가?”
<장자>에 나오는 이 글은 공자의 사상을 비판하게 위해 든 사례지만, 수오지심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이 일화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여기서 ‘수오지심’은 <맹자>에 나오는 성어이다. 자신이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옳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을 뜻하는 것으로, 맹자는 이것이 의(義)의 단서가 되는 마음이라고 말한다.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양심, 그러니까 옳지 않은 일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다면 잘못을 고칠 수 없다. 그래서 잘못된 점을 고치기 위해서 가장 우선되어야 할 것이 바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이다.
학교라는 곳은 매일이 버라이어티 한 사건들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그 대부분의 사건은 일부 몇 명의 아이들에게서 주로 일어나고, 그 아이들을 가리켜 '문제아'라고들 부른다. ‘문제아’라는 표현은 아이들을 너무 단정 짓는 것 같아 ‘꾸러기’라고 부르겠다.
문제를 일으키는 꾸러기들은 대개 두 부류로 나뉜다.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문제를 일으킬 것 같은 아이들과 언젠가는 마음을 잡아 훌륭하게 자랄 것 같은 확신이 있는 아이들이다.
물론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이런 생각을 갖고 있지만, 그것이 모두 옳지는 않다. 아이들은 어떻게 변모할지 모르고, 아이들의 미래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으니까.
다만 이런 두 부류의 아이들의 차이점이 바로 ‘부끄러움’이다. 제가 저지른 잘못을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에서 차이가 난다.
어떤 꾸러기들은 숨 쉬듯 매일 사건사고를 만들고, 선생님 앞에서 부끄러워하며 매번 잘못을 뉘우치지만, 또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새로운 일을 벌인다.
이런 아이들을 보면 물론 화가 나긴 하지만, 그 아이가 밉지는 않다. 오히려 어서 빨리 철이 들었으면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뿐이다.
반면에 제가 저지른 잘못을 생각하기는커녕 선생님께 혼이 나서 억울하다고 펄쩍펄쩍 뛰는 아이들이 있다. 물론 진짜 억울한 경우도 있을 수 있겠지만, 희한하게도 이런 아이들은 항상 억울하기만 하다.
이런 친구들에게는 내 시간과 정성을 들여 깊이 대화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대로변에서 똥을 싸는 사람을 피해 가는 공자처럼 말이다. 만인의 스승이라 불리는 공자조차 가르치려 들지 않는데, 소인배 중에 소인배인 나 같은 사람이 가능할 리가 있겠는가?
그나마 사춘기의 미친 짓은 호르몬의 영향이니 언젠가는 지금의 자신을 후회하겠지 생각하다가도, 아이들과 똑같이 생각하는 부모를 만나면 안타까운 탄식이 흘러나온다. 특히나 아이의 부모가 제 자식의 잘못을 조금이라도 덮기 위해 기어코 선생님들의 잘못을 찾아 꼬투리라도 잡으려 드는 사람일 때는 더더욱.
다른 사람의 잘못을 헤짚어 제 아이의 잘못을 덮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옳은 것과 그른 것이 무엇인지 가르치는 게 우선이 아닐까? 잘못된 것을 인정해야만 고칠 수 있고, 그렇게 끊임없이 고치기를 반복해야만 제대로 된 어른으로 자랄 수 있는 게 아닐까?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나의 아이들은 학교에서 모범생보다는 꾸러기에 가깝다. 엄마가 선생님인데도 말이다. 아이의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오면 우리 아이가 또 무슨 잘못을 했을까 심장부터 벌렁벌렁 뛰니, 오죽하겠는가?
나는 우리 아이들이 지금 당장 갑작스레 모범생이 되어 나타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바란다고 당장 바뀌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최소한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구분할 줄 알고, 때로는 잘못을 저지르기도 하지만, 제 잘못을 부끄러워하며 고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언젠가, 시간이 지나고 미친 듯 날뛰던 사춘기의 호르몬이 잠잠해지는 시기가 온다면, 그땐 정말로 철이 들어 멋진 어른으로 자라 있지 않을까?
수오지심(羞惡之心 부끄러워할 수, 미워할 오, 어조사 지, 마음 심) :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옳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