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杞) 나라에 살던 어떤 사람이 하늘과 땅이 무너져서 떨어지면 몸을 의탁할 곳이 없을까 봐 걱정되어 먹고 자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러자 그 사람이 걱정하는 것을 걱정해 주는 사람이 그에게 가서 ‘하늘은 기(氣)가 쌓인 것일 뿐이다. 기가 없는 곳이 없거늘 어찌 무너질까 근심하는가?’ 라며 말하였다고 한다.
위 글에서 유래한 ‘기우’는 앞일에 대해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것을 뜻하는 성어이다.
나는 원래 걱정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다. 걱정을 한들 결과가 달라지지 않을 텐데, 걱정에 걱정을 보태며 한없이 굴을 파는 건 내 체질에 맞지 않았으니까. 걱정 대신에 일단 도전하고, 실패하면 까짓 거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나의 그런 쿨(?)함을 썩 좋아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 한심하기 짝이 없는 걱정이라는 것을 끝도 없이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말았다.
그것은 바로 나의 아이가 생긴 이후부터였다. 아이가 생긴 이후부터 나는 공기처럼 걱정을 내뿜고 있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아이가 행여나 잘못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마음은 줄어들기는커녕 시간이 지날수록 끝도 없이 증식했다. 아픈 곳이라도 생길까 봐, 불의의 사고라도 날까 봐,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서 힘들어할까 봐, 사람들에게 상처라도 받을까 봐…
이렇듯 아이를 향한 부모의 걱정은 시간과 공간에 상관없이 참 다양한 종류와 색깔로 불어난다. 그 걱정의 종착점은 우리 아이만큼은 결핍도, 실패도, 좌절도, 고통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불행한 경험이라고는 한 톨도 겪게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 마음이 예외 없이 나에게도 적용이 된 것이다. 우리 아이의 세상이 힘들지 않도록 부모로서 할 수 있는 무엇이든 해주고 싶은 마음은 도무지 자제할 수가 없으니까.
학부모에게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아이가 중학교에 올라와서 수행평가를 챙겨주고 싶은데, 언제 어떤 종류의 수행평가를 치르는지 잘 알지 못해서 챙겨주지 못하고 있다고 말이다.
아이를 챙겨주고 싶은 마음과 행여나 실패할까 봐 걱정하는 마음이 그 질문 안에 여실히 보였다. 왜냐하면 그 모습은 바로 나의 모습이기도 하니까.
교사엄마와 그냥 엄마는 다르냐고? 전혀 아니다. 교사 엄마든, 그냥 엄마든, 엄마가 되면 다 똑같다.
수행평가도 챙겨주고 싶고, 공부를 잘할 수 있도록 뭐라도 더 가르쳐주고 싶고, 친구와 다투기라도 하면 해결해주고 싶다. 정말 마음 같아서는 아이의 가방 속에 들어가 아이의 일과를 따라다니며 확인하고 싶을 정도니까.
중학교의 수행평가는 학교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활동 중에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챙겨주고 싶어도 챙겨줄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수행평가가 그 시작일 뿐 부모의 챙김을 벗어나는 아이의 영역은 앞으로 점점 더 불어날 것이다.
결국 부모인 우리는 아무리 안달복달해도 아이의 하늘을 모두 우산으로 뒤덮어 비 한 방울 맞지 않게 할 수는 없다.
제 아이가 다쳤다고 학교로 달려와 선생님을 몰아세우거나, 아이의 가방에 녹음기를 넣어 보내거나, 학교와 관련된 뉴스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몰지각한 학부모들도 결국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절대 아이를 대신해서 인생을 살아줄 수도 없으며, 물론 아이도 제 삶을 부모에 종속된 채 살아가기를 바라지 않는다.
아이를 향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수많은 걱정들은 아이들이 한 인간으로서의 제 역사를 써나가는 것에 절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이의 하늘이 무너질까 봐 걱정되어서 밖으로 내보내지 않을 수는 없다.
내가 사랑하는 나의 아이는 집 밖을 나서야 하고, 때로는 좌절과 고통을 겪으며, 더 단단하고 옹골차게 속을 채워, 하나의 인간으로 성장할 테니까.
정작 아이는 마음껏 하늘을 올려다보며 큰 꿈을 꾸기를 주저하지 않는데, 하늘이 무너질까 봐 아이의 소맷자락을 붙잡고 나가지 못하게 하고 있는 건 부모가 아닐까?
실은 오늘 쓰고 싶었던 글이 있었다. 그런데 오늘 종일 쓸데없는 걱정에 사로잡혀 열심히 땅굴을 파고 있는 게 아닌가? 내년이면 아이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는데, 벌써부터 입시 걱정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내가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로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었구나.’ 자각하며 ‘기우’라는 성어가 문득 떠오른 것이다.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아이를 향한 걱정이 머릿속에서 자꾸만 불어나서 견딜 수 없다. 걱정한다고 아이의 인생이 달라지는 건 아닐 텐데 말이다.
그래서 또 다짐한다. 쓸데없는 걱정 대신, 아이가 선택한 길을 지지하고, 넘어지면 손을 내밀어 잡아줄 수 있도록 곁에서 응원하며 힘이 되어줄 수 있는 부모가 되자고 말이다. 아이는 나보다 훨씬 빛나는 인생을 살 것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