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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영 Oct 17. 2024

혼돈칠규, 다름과 틀림

강요되는 삶의 방식


 <장자>에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남해의 임금을 숙이라 하고, 북해의 임금을 홀이라 하며, 중앙의 임금을 혼돈이라고 한다. 숙과 홀이 혼돈의 땅에서 서로 만났다. 혼돈이 이들을 매우 융성하게 대접하자, 숙과 홀은 혼돈의 극진한 대접에 보답하고 싶어, 숙과 홀이 말을 나누었다.

“사람마다 일곱 개의 구멍이 있다고들 하지. 그 구멍으로 보고 듣고 먹고 쉰다지. 그런데 혼돈에게만 없어. 시험 삼아 구멍을 뚫어 줘 볼까?”

 숙과 홀은 혼돈을 위해 날마다 한 구멍씩 뚫었다. 이레가 지나자 혼돈은 죽고 말았다.


수업시간에 있던 일이었다. 시간이 남아 아이들에게 음악을 한 곡 틀어 주기로 약속을 했다.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긴 한 친구가 음악을 선곡했다.  그 아이가 틀어달라고 한 음악은 조금 난해한 밴드 음악이었다. 갑자기  다른 아이들이 야유를 하기 시작했다.

“샘 쟤는 오타쿠예요.”

“그런 거 누가 들어요. 다른 거 틀어주세요.”

약속은 약속이니, 그 아이의 취향을 존중해 주자며 음악을 틀려고 할 때였다. 아이는 괜찮다고, 갑자기 듣고 싶지 않아 졌다며, 혼란스러운 표정과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신청곡을 취소했다.


 이것은 교실에서 일어난 작은 에피소드에 불과하지만, 우리는 ‘다름’을 ‘옳지 않음’과 동일 선상에 놓는 경향이 있다.

  삶의 방식이나 개인의 취향에는 분명 정오답이 존재하지 않는데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다른 삶의 방식을 쉽게 옳지 않음과 같은 값이라고 여길까?

 

 남들이 인정할만한 좋은 대학을 나와서 번듯한 직장을 갖고, 결혼을 하고, 좋은 차를 몰고, 좋은 아파트에 사는 것.

 그렇게 사는 것만이 성공한 인생처럼 여겨지니, 그렇지 않은 삶은 옳지 않은 삶이 된다. 결국 우리 아이들은 그런 삶이라는 똑같은 꿈을 이루기 위해 어릴 때부터 무한 경쟁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


 한 개인의 삶의 방식이 남을 침해하지 않는 수준의 것이라면 우리는 누구도 그 개인의 삶의 방식을 평가하거나 비난할 수 없고, 다양성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렇다면 어쩌면 학교라는 이 공간이 수없이 많은 ‘혼돈’들에게 필요 없는 구멍을 억지로 뚫어 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문득 생각이 들었다.

 매 순간 아이들을 대하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하는 말의 뉘앙스, 그 속에 담긴 감정, 몸짓과 손짓 모든 것이 아이들로 하여금 한 가지 정답만이 있음을 조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다 보면 남들과 다름을 부끄러움으로 여길 테고, 앞으로도 그 친구와 같은 아이들은  결코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친구들 앞에서 틀어달라고 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고작 음악 취향일 뿐인데도 말이다.

 시간이 지나고 자연스럽게 취향이 변할 수도 있겠지만, 나다움을 버리고 무리의 취향에 맞추며 그들과 어울리고 사회에 섞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지난주, 우리 학교에 멀쩡한 회사를 그만두고 가난하지만 행복한 글쓰기의 길로 들어선 어떤 소설가의 강연이 있었다.

 그 소설가의 눈빛 속에는 반짝이는 별이 하 자리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빛나는 별은 ‘나는 지금 행복해 미칠 것 같다.’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 있었다.


 우리 아이들은 대중의 취향이나 삶의 방식을 쫓지 않고, 내면의 내가 추구하는 행복을 쫓아가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이 보기에 구멍이 하나도 없어도 행복한 ‘혼돈’처럼.


  그 생각을 하다가 또, 굳이 귀찮다는 내 아이를 불러다가 물었다.

 ‘너는 어떻게 사는 게 행복할 것 같아? 다른 사람의 눈치 보지 말고 네가 정말 행복한 게 무엇인 지 말해봐.’

 그러자 아이가 의뭉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위아래로 쳐다보며 말했다.

“왜 그래? 새삼스럽게?”

 ‘하, 나도 결국은 한 꿈만 꾸게 강요하는 부모였구나.’

 또 그렇게 반성한다.


 융숭한 대접의 보답이라는 선의로, 혼돈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숙과 홀은 구멍을 뚫었겠지만, 혼돈이 말하지 않았을까?

‘나는 괜찮다고, 나는 나답게 이렇게 살 테니, 제발 내버려 두라고.’




혼돈칠규(混沌七竅) 섞일 혼, 엉길 혼, 일곱 칠, 구멍 규 : 혼돈의 일곱 가지 구멍, 혼돈에게 일곱 가지 구멍을 낸 이야기.


* 칠규 : 사람에게 있는 일곱 가지 구멍을 가리키는 말. 귀 2개, 눈 2개, 콧구멍 2개, 입 1개, 총 7개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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