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과 연애를 해보니, 그는 사랑을 말로는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예쁘다는 말도, 보고 싶다는 말도 내가 먼저 해야 했지만 그건 나한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말 대신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이었고 나는 그런 방식이 좋았다.
비 오는 날이면 우산을 가져다주고, 같이 장염에 걸렸던 날엔 문 앞에 죽이 놓여있었다. 연락을 하지 않아도, 부탁을 하지 않아도 그는 언제나 필요한 순간에 있었다.
함께 영화를 보다 내가 울기라도 하면 그는 주머니에서 조심스레 구겨진 휴지를 꺼내주고 내 손을 잡아 주었다. 말없이 내 손등을 덮는 그 손길은 내가 괜찮아질 때까지 떨어지지 않았다.
같이 길을 걷다 내가 핸드폰을 보느라 앞을 보지 못하면, 그의 손이 내 팔을 가볍게 끌어당겼다. 차가 올 때는 몸으로 막아주듯 내 앞으로 서기도 했다.
그의 사랑은 큰 제스처가 아니었지만, 작은 행동마다 분명히 존재했다. 나는 그런 방식이 좋았다.
가끔 내가 “오빠 나 오늘 어때?”라고 물으면 그 사람은 멋쩍게 웃고는 내 뒤로 가서 나를 살짝 끌어안았다. 그게 그 사람만의 “예쁘다”였다.
나는 그게 좋았다. 서툴고, 뻣뻣하고, 그래도 자꾸 마음이 들키는 그 모습, 그 사람은 손끝으로 표현했고, 나는 그걸 온몸으로 느꼈다.
그는 말이 적어서 때때로 나는 불안했다. ‘내가 너무 혼자 좋아하는 걸까’?’ 싶다가도 그 사람이 나를 보는 눈빛을 보면, 모든 불안이 사라졌다. 그 사람 눈에는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으로 담겨있었다. 확신할 수 있었다. 표현은 어색해도, 감정은 확실했다.
아주 가끔은 영화 속 남자 주인공 보다 더 멋있는 말을 무심한 얼굴로 했다. 그의 말들에 가끔은 가슴이 벅찰 지경이었다. 그의 진심은 언제나 그렇게 불시에, 그러나 강하게 다가왔다.
그 사람과의 연애는 크게 싸우지도, 자주 다투지도 않았다. 감정이 격해질 틈이 없을 만큼 그 사람은 언제나 조용히 나를 받아줬다.
내가 투정을 부려도 그는 ‘응 알겠어.‘라고만 했다. 내가 삐져 있을 때면 기다려 주기만 했다. 나는 자꾸 울고, 그 사람은 자꾸 닦아줬다.
계절이 바뀌어도, 시간대가 달라도, 그 품에 안기면 언제나 따뜻했다.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 온도가 곧 그의 사랑이었다.
우리가 연애를 한 지 2년 즈음되었을 때 나는 그 사람이 없이는 하루를 상상할 수가 없었다. 서툴고, 수줍고, 천천히 다가왔지만, 결국 내 안을 가득 채운 사람, 나는 그를 처음부터 사랑했다. 그도 결국은, 나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오래 사귀었다. 5년이었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는 아주 깊이 익숙해졌다. 매일을 같이 붙어 있었고. 벌써 3년이라는 시간을 같은 집에 살아왔다. 같은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잠들기 전엔 서로에 기대 넷플릭스를 보았다. 사소한 다툼보다 더 많았던 건, 아무 일도 없는 평범한 일상이었다.
그 사람은 5년이라는 시간 동안 많이 변했다. 마치 학습이 빠른 어린아이 같았다.
내가 하는 사랑의 표현들을 그가 서서히 흉내 내기 시작했다. 처음엔 어색하게, 그러다 점점 익숙하게. 어느 날 문득, 내가 했던 말을 그가 똑같이 내게 돌려주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가슴이 벅찼다.
“사랑해, 너랑 있을 때 세상에서 제일 행복해. 나는 제일 행복한 남자야.”
닭살 돋는 표현 들을 이제는 잘하면서도, 아직 까지 새빨갛게 물든 귀는. 그 사람의 노력이고 사랑이었다.
그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조용하고 무던한 성격, 더듬거리며 느릿하고 수줍은 말투, 다정한 눈빛. 늘 그랬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의 성격들이 믿음이 되었다. 안정이 됐고 안식이 됐다. 나는 생각했다. ’ 나는 평생을 이 사람과 함께하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