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결혼은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우리는 ‘동거’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었지만, 사실상 이미 부부처럼 하루하루를 보냈다.
아침이면 함께 눈을 떴고, 저녁이면 함께 불을 끄고 잠들었다. 처음엔 그냥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졌을 뿐인데, 어느새 떨어져 있는 게 더 어색해졌다. 그 사람 없는 공간이 불편하게 느껴졌고, 그 사람 없는 하루는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
그 사람은 늘 말없이 내 옆에 있었다. 내가 감기몸살로 몸져누워 있으면 말없이 죽을 데워 가져왔고, 내가 술에 취해 엉엉 울면 조용히 이불을 덮어주고 등을 쓸어내렸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손끝과 온기만으로도 충분히 전해졌다. 그게 그의 방식이고 그의 사랑이었다.
결혼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나온 건, 함께 산지 3년쯤 되었을 때였다. 서로 평생 함께 하자고는 했지만 결혼식은 올리지 않기로 했었는데, 친한 친구의 결혼식을 보고 문득 나도 결혼식을 하고 그와 정식으로 부부가 되고 싶었다.
어느 날 저녁 밥을 먹다가 내가 말했다.
“오빠 우리도 결혼식 하자.”
그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나를 보더니, 짧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만난 지 5년, 우리는 결혼 계획을 세웠다. 별건 없었다. 작은 반지를 맞추고 상견례를 하고 예식장을 골랐다.
반지를 받아 처음 손에 끼우던 순간, 나는 참을 수 없이 눈물이 터졌다. 반짝이는 금속 보다, 반지를 낀 그의 손이 더 눈부셨다. 긴 손가락, 단정한 손톱, 그리고 그 손에 얌전히 자리 잡은 얇은 원이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가슴이 뭉클했다. 그제야 실감이 났다. 정말 내 사람이 되는구나, 이제는 정말 이 사람을 놓치지 않겠구나.
우리는 상견례를 하고 예식장을 알아봤다. 화려하지도, 복잡하지도 않았다. 늘 그래왔듯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한 걸음씩 나아갔다.
결혼은 우리의 선택이라기보다, 오래 함께 살아온 결과고 저절로 도착한 목적지 같았다.
결혼식 전날, 우리는 평소처럼 불을 끄고 나란히 누웠다. 그런데 그날만은 달랐다. 눈을 감아도 마음이 들떠서 잠이 오지 않았다. 천장을 가만히 바라보니, 지난 다섯 해의 시간이 필름처럼 흘러갔다.
처음 만난 날, 첫 고백, 함께 살기 시작한 날, 반지를 맞췄던 날... 모든 장면이 빠르게 지나갔다.
그가 옆에서 갑자기 말했다.
“여보, 우리 내일 결혼해요.”
그 말이 너무 귀엽고도 실감나서 나는 웃음이 터졌다. 그가 웃는 얼굴로 나를 보니 또 눈물이 찔끔 나왔다.
우리는 늦게까지 뒤척이며 이야기를 하다가 간신히 잠들었다.
눈을 감았다 뜨니 결혼식 날 아침이었다. 화장을 하고 드레스를 입고, 예식장에 들어서니 낮선 꽃향기와 웅성거림이 몰려왔다.
결혼식에는 각자 회사 사람들, 가족, 친척, 친구들이 왔다. 우리 둘 다 아는 지인이 많지 않아서 조용한 결혼식이었다.
축가는 임영웅의 <사랑해 진짜>라는 곡이었고 내가 직접 불렀다. 떨리는 목소리였지만, 가사는 온전히 내 마음이었다.
내 귀여운 신랑은 결혼식 내내 울었다. 우리 서로 내가 울 것 만 걱정했지, 그 사람이 울지는 몰랐다. 눈물이 없는 사람인데 뭐가 그렇게 눈물이 났는지 우리는 눈을 마주치면 울었다. 너무 행복해서, 이제 행복할 일만 남아서 벅차서 눈물이 났다.
결혼사진 속 우리는 서로만 보고 있었다. 다른 건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결혼식이 끝나고 그 사람은 내 손을 잡고 말했다.
“이제 진짜 우리 둘이야. 잘할게 잘 살아보자. 사랑해”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는 진짜 ‘우리 둘’이었다. 같이 눈뜨고, 같이 밥 먹고, 장보고, 같이 빨래를 개던 수많은 일상들이, 그 자체로 ‘결혼’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결혼식이라는 이름 아래 한번 더 다짐했을 뿐이고, 실제로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미 서로의 가족이었다.
결혼식을 치르고도 우리는 변한 게 없었다. 여전히 그 집에서, 여전히 같은 이불속에서 같이 눈을 떴다. 아침이면 내가 먼저 일어나고, 그 사람은 눈도 못 뜬 채 내 허리를 감고 말없이 매달렸다.
그의 잠투정은 우리의 매일 아침 루틴이 되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하루가 늘 조금은 웃으며 시작됐다.
퇴근 후 집에 오면 내가 밥을 차리고 그 사람은 설거지를 했다. 가끔 씩은 나를 위한 밥상이 차려져 있을 때도 있었다.
반찬이 많지 않아도, 식탁에 마주 앉아 젓가락을 부딪히며 먹는 순간이 행복이었다. ‘맛있다’라는 말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더 먹으라고 내 쪽으로 반찬을 밀어주는 그의 손길이, 무엇보다 든든했다.
주말이 되면 저녁에 항상 산책을 나갔다. 항상 다니는 길이지만 그와 함께 걸으면 풍경이 달랐다. 손을 잡고 걷다 뛰기도 하고, 장난처럼 서로를 잡아당기며 웃기도 했다. 평범한 길 위에서, 평범한 대화를 나누며, 나는 내가 가진 모든 행복을 실감했다.
그 사람은 나의 행복이었다. 나는 그와 살면서 거창한 행복보다 작은 안정에 익숙해졌다. 외로움이란 게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그 사람 품 안에서는 괜찮다고 느낄 수 있었다.
그 사람은 나의 가족이 되었고, 나의 하루가 되었고, 나의 모든 계절이었다. 봄의 햇살도, 여름의 장마도, 가을의 바람도, 겨울의 추위도 모두 그와 함께 보냈다. 그래서 나는 너무 쉽게 믿었다. 이 시간이 당연히 계속될 거라고.
그때는 몰랐다. 그 시간이 이렇게 짧게 끝날 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