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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듬 Feb 21. 2016

졸업 전후 단상

교실 속 이야기

2015.12.31

이맘때 쯤이면 감기를 앓듯, 마음이 허하다.

항상 겨울 방학이면, 졸업을 앞두고 있을 때면, 서운하고 아쉬운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이 느껴진다. 1년이면 짧지 않은 시간인데 연말쯤 되면 왜 그리 짧았는지, 하지 못한 일이 왜 그리 많은지.


마음을 붙이는 것보다는 떼는 것이 더 힘들다.

교사는 평생 외사랑을 하는 사람이라는데, 교사는 어찌 되었든 시한부 인연일 뿐인데, 사람의 관계에 있어 '만남과 헤어짐'이 당연한 것인데 나는 무엇이 그리도 아쉽고 힘든지. 받아들여야 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데 뭘 이리 유난인지.

5년이 되었어도 여전히 적응이 잘 안 된다. 어쩌면 오히려 다음을 기약하는 것이 별 소용 없는 일이라는 것을 느껴가고 있어서 더 힘들어지고 있는가도 싶다.

아무렇지 않게 헤어지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마음이 조금만 둔해졌으면 좋겠다.

쓸쓸한 밤이다.


2016.02.05

오늘, 2015학년도를 함께 한 아이들과의 마지막 수업.

어제는 내가 바쁘고, 아이들이 자유시간을 갖고 있다는 핑계로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나왔던 기억이 났다. 그래서 오늘은 저마다 옹기종기 모여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다가가 등 두드려주며 "졸업 축하해, 고등학교 가서 잘 지내렴!" 웃으며 인사를 했다. 아이들은 별 반응 없이 제각기 떠들기 바빴다.

끝나는 종이 울리고 막 나서려는 내게, "쌤. 1년이 참 빨랐네요. 1년간 고생 많으셨어요."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녀석 둘. 정말 진심으로 고맙다고, 부둥켜 안고 우는 시늉을 하고 나왔다.

생각해보니 올해는 아이들을 졸업시킨다는 생각에 나 혼자 감정이 충만(?)해져 있고, 아이들에게서 졸업을 앞둔 기색은 별로 못 느낀 것 같다. 요 며칠 사이 우리반 아이들 누구도 내게 졸업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다른 반 수업을 들어가도 마찬가지고. 그래서인지 나도 개개인에게 졸업을 축하한다고, 잘 지내길 바란다고 말 한 마디도 제대로 못해주었다. 졸업식 날엔 정신이 없어 못해 줄 말들이라 좀 아쉽다.

남학생들이 평소 감정 표현하는 것에 인색하고 그것을 어색해 하는 까닭인지 작년, 재작년의 졸업식들과는 또다른 느낌이다. 괜히 나 혼자 유난인가 싶은 생각도 들고. 실감이 나는 듯 나지 않는 듯, 그냥 그렇게 오늘 하루를 보냈다. 마음이 복작복작, 정리는 안 되고. 이러다 곧 2015년은 마무리가 되겠지 싶다. 그냥, 졸업도, 다 주고받지 못한 마음도, 아쉽다.


2016.02.11

하루종일, 상처뿐인 졸업식이라고 생각했는데...

늦은 밤, 아이들에게서 하나둘 연락이 온다. 1년동안 말 한 마디 내색 않던 녀석들의 입에서 '존경한다', '쌤 같은 선생님을 어디 가서 만나느냐', '사랑한다'는 말이 나온다. 그 어떤 고백들보다 더 가슴 깊이 스민다. 잠시 서운했던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리며, 되려 미안한 마음이 든다. 아주 자그마한 감정 표현에도 '오글거린다'고 못 참아내는 녀석들이니, 얼마나 큰 맘 먹고 내뱉는 말인지 느껴진다. 이렇게나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었는데 그걸 모르고....

내가 생각하고픈 대로 쉬이 단정하고 속상해하는 일은 그만해야겠다. 누군가에게 주었던 내 마음이 기대했던 만큼 돌아오지 않았다고 서운해 하지도 말아야겠다. 꼭 그 마음이 닿았다가 '돌아와야 하는 것'은 아닌 거니까. 그리고 그 마음을 내가 놓치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저 인연이 되어 문제 없이 1년간 쭉 함께 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일이었다고 생각하기로 하자. 그게 맞는 거다.

우리 아이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한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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