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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듬 Dec 05. 2015

자유와 방임 사이

교실 속 이야기

A선생님께서 휴대폰 한 대를 내게 들고 오셨다. 지각을 한 D가 휴대폰을 내지 않고 주머니에 넣어 두었다가 발각되어, 수업 시간 중에 휴대폰을 압수당했다고 했다. 불 보듯 뻔하게 휴대폰 압수에 대해 불만을 가지며 여러 마디 말대꾸도 한 모양이었다. 선생님께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시며, 담임 선생님께서 지도하셔야 할 것 같다며 휴대폰을 두고 가셨다. 

하루 일과가 끝나 종례를 마치고 교무실로 내려오니, 당연히 D가 쫄래쫄래 뒤에 따라 내려 왔다. 입이 잔뜩 나와서 ‘지각을 해서 휴대폰을 내지 못한 것이다. 수업 시간에는 사용하지 않았다. 선생님이 주머니에 있는 것을 굳이 꺼내서 가져 가셨다.’ 등의 변명들을 늘어놓는가 싶더니 어느덧 목소리가 커져 “달라고요!” 외치기까지 했다.

사실 나는 휴대폰을 일주일간 빼앗아 두고 싶지는 않았다. 대부분 학교의 교칙에 휴대폰 수거 규정을 어길 시에는 일주일 정도의 압수하도록 정해 두고 있기에, 어쩔 수 없이 D를 설득해 보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D의 목청이 커지기 시작하니, 무슨 말로도 설득하기가 어렵다는 판단이 들었다. 게다가 교칙이라고는 하지만 나 스스로도 휴대폰 1주일 압수가 합당하다는 확신도 없었기에 더욱 승강이를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결국 학생에게 앞으로 조심할 것을 당부하고, 벌점을 부여하는 선에서 처리하기로 하며 휴대폰을 쥐어주었다. 

얼마 후 A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학생의 휴대폰을 잘 간수하고 있냐 물으셔서, ‘학생을 지도하고 돌려주었다‘고 말씀드렸더니 곧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학급이 무너질 거다. 학생들에게 나쁜 선례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너도나도 휴대폰을 내지 않고 버티면 어떻게 할 것이냐. 아무래도 압수를 다시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초보 교사에게 조언을 하시는 아량 넓은 선생님의 말이 내게 비수가 되어 콕콕 박혔다. 내 생각은 교칙과 조금 달랐기에 그에 따랐을 뿐인데, 마치 내가 학생 지도를 포기한 교사가 된 것 같았다. 사실 학생과 더 이상 승강이 하고 싶지 않았던 마음도 한 켠에 있었기에 내 스스로 방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자책감이 들기도 했다. 큰 잘못을 한 것 같았다. 게다가 앞으로 학급이 무너질 거라니, 그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있자니 앞날이 암담하기만 했다.


사실 평소에도 내겐 우리에게 ‘학생이 휴대폰을 휴대하고 사용하는 것을 금지할 권리가 있는가’하는 의문이 컸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본인이 갖고 싶은 것을 갖고,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당연한데, ‘학교’라는 공간에 있다는 이유로 그러한 자유가 당연히 침해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수업 시간에 휴대폰을 가지고 놀다가 피해를 준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이후 그 선생님은 다른 선생님들과 나의 행동에 대해 토의를 하셨다며 2차례나 더 전화를 하셨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서도 잠을 제대로 이루지도 못했다. 교칙을 내가 깨고, 내가 학급의 질서를 흐트러뜨리는 것만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A선생님의 말씀이 귓가에 맴돌아 내가 아이를 귀찮아서 지도하지 않고 방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데까지 미쳤다.

다음 날, 불편한 마음을 다시 잡지 못 한 채로 D를 맞았다. D는 앞으로 잊지 않고 휴대폰을 잘 내겠다는 약속을 지키겠다고 아침 일찍부터 휴대폰 수거함에 휴대폰을 넣어 두었다. 주변 아이들이 왜 휴대폰을 압수하지 않았는지 물으면 무어라 대답해야 할까 지레 걱정이 되었지만 아무도 D의 휴대폰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직원 회의로 모든 선생님들이 함께 한 자리에서 A선생님을 만났다. 휴대폰 문제로 마음 고생하였겠다며 어찌되었냐고 물으셨다. 벌점을 주고, 휴대폰을 돌려준 채로 D의 행동 변화를 기다린다고 하였더니 재차 걱정을 하신다. 이를 지켜보던 학생부장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요즘 휴대폰을 일주일동안 빼앗을 권리가 학교에 있나요. 사실 아침에 일괄적으로 걷는 것도 문제 삼고자 하면 문제 삼을 수 있죠. 그냥 다들 잘 내니까 걷는 거지. 휴대폰 걸리면 계도 차원에서 벌점만 주세요. 계속 행동이 안 변하면 성찰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되니까요.” 

학생부장 선생님께서 몇 마디 거들었을 뿐인데, 복잡했던 머릿속이 조금이나마 정리가 되었다. D를 제대로 지도하지 않고 방임한 것인가 싶었던 마음 한 켠의 자책감도 조금은 가라앉았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선배 선생님이 있다는 생각에 든든하기도 했다.     


여전히 나는 아침에 휴대폰을 수거하고, 휴대폰을 사용하고 싶을 때는 직접 수거함에서 꺼내 주어야 하는 불편한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D는 지각하지 않는 날이면 아침마다 성실하게 휴대폰을 내고 있으며, 지각하는 날은 여전히 깜빡하기도 한다. 때때로 다른 학생들이 휴대폰 제출을 깜빡하기도 하지만, A선생님의 예고처럼 ‘교사의 교칙 위반 행위’ 때문에 학급의 학생들이 모조리 휴대폰 제출을 거부한다거나, 상습적으로 나를 속이는 행동을 하는 등의 ‘학급이 무너지는’ 일은 아직 없었다. 가끔 개개인과 휴대폰 문제로 갈등을 겪어도 반 전체가 흔들리지 않고 잘 지내주고, ‘깜빡하고 휴대폰을 내지 못했다’며 2-3교시가 지나서라도 휴대폰을 들고 오니 담임된 입장에서 참 고맙다.

사실 나도 학생들에게 휴대폰을 소지하고 사용할 자유를 주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말하는 것이 조심스럽다. 나 역시 휴대폰을 일괄 수거하는 방식으로 덕을 보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일을 겪으며 한 가지 느낀 것은, 누군가에게는 방임으로 보일지 모르는 나의 방식이 학급 운영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최소한, 아이들은 휴대폰이 학업에 방해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싫은 규칙’이지만 ‘규칙’이라서 지키려고 노력한다. 그 노력이 다소 미흡할지라도 말이다.    

차츰차츰 학생들에게 자신들의 물건을 어찌할 것인지 결정할 자유를 주어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본다. 오전에 휴대폰이 필요하다면 오전이 지난 후에 제출하고, 제출하고 싶지 않다면 그냥 두는 것이다. 휴대폰 사용이 지나쳐 학교 생활에 방해가 될 때, 그 때 개입하여 지도하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른들의 기우와 달리 학생들이 당연한 권리를 보장받으면서 스스로 책임감을 키워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학생들이 스스로 무언가를 해 볼 기회라도 주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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