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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듬 Sep 30. 2015

방학이라는 마법

교실 속 이야기

교실인지 찜질방인지, 서른 다섯 명이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복작거리던 7월의 수업이 끝났다. 2회고사가 끝나고 이제나저제나 방학이 언제 오려나 애타게 기다리던 아이들의 얼굴에 아침부터 웃음꽃이 피었다. 조회를 들어가 오늘의 일정을 전달하니, 아이들은 방학식날조차 4교시를 꽉 채워 일정을 잡은 학교에 입이 잔뜩 나와서는 “해도해도 너무해요.”, “우리반만 일찍 가요.”라며 되지 않을 애교들을 부렸다.

“1교시와 2교시는 정상 수업을 하고, 3교시에는 방학식을, 4교시에는 교실과 특별구역 대청소를 하고 집에 갑니다.”

당장 방학식을 하고 아이들을 집으로 보내면 좋겠건만, 언제나 그렇듯 학사일정은 우리의 편이 아니었다. 당연히 정상수업이 될 수가 없는 정상수업을 두 교시 하고, 정상적으로 정보 전달을 할 수가 없는 방학식을 겨우 넘기고 대청소 시간이 왔다.

 

평소에 청소할 때는, 10명이 채 안 되는 아이들과 청소를 해도 할 일 없이 노는 손이 생기는데 서른네 명을 데리고 청소하라니 골치가 아팠다. 봉사 활동 시간은 모두에게 동등하게 부여되니 누군가가 일을 몰아 하지 않도록, 누군가가 팽팽 놀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했다. 그렇기에 내 나름대로 공평하게 청소 분담표를 짜 보았지만, 어쩔 수 없이 고생할 아이들이 몇몇 눈에 보였다. 몇 년이고 제자리에 있었을 사물함을 옮기고 청소하는 임무를 담당한 아이들. 일이 많다며 하기 싫다고 도망가면 내가 일당백으로 모두 해내야 할 것이고, 지나치게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하면 괜히 내가 미안한 일이다! 아이들이 적당히, 깨끗하게, 잘, 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잠자코 지켜보았다.


생각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다른 구역의 청소를 끝낸 아이들이 하나둘 모여 들더니, 힘을 모아 사물함을 옮기고 사물함이 있던 자리를 쓸고 닦기 시작했다. 그 구역을 담당하는 아이들도 당연히 열심히 했다.

“쌤~ 이상한 냄새가 나요.”

“휴, 이 쓰레기들은 몇 년이나 됐을까요?”

  코를 틀어 막거나 한숨을 푹 내쉬면서도 다들 적극적이었다. 그렇게 다른 구역 담당 아이들이 도와준 덕에, 사물함 구역을 담당한 아이들이 불만을 조금도 내비치지 않고 청소를 마무리했다. 어찌나 기쁘고 고맙던지. 게다가 오늘따라 우리 반 말썽꾸러기 W가 본인이 맡은 벽 닦기 청소를 열심히 한 후에 놀러나가 주었으니! 기분이 정말 좋았다.


그러나 곧 문제가 생겼다. 청소를 끝내고 보니 하교 시간까지 어언 30여분이 더 남아 있었다. 당장 집에 보내고 싶었지만, 모든 학급이 같은 시간에 하교를 할 수 있도록 하교 시간을 지켜달라는 당부가 있었기에 그럴 수 없었다. 하교 시간이 봉사 활동 1시간을 부여하는 근거가 되기에 지켜달라는 담당자의 부탁이었다. 어쩔 수 없이 아이들에게 ‘힘들었으니 잠시 쉬라’고 이야기한 후, 교무실에서 시간이 가기를 기다렸다.

교무실로 내려온 지 한 15분쯤 지났을까, 본인 구역 청소를 마치고 옆 반으로 마실 나갔던 꾸러기 W가 쫓아 내려왔다. 나를 보자마자 W는,

“쌤! 3학년 딴 반 다 가잖아요. 우리 반만 왜 안가요?”

버럭 언성을 높였다.

“어느 반이 집에 갔어? 우리 학교 학생들 모두 같은 시간에 하교하기로 했다.”

“쌤! 아녜요. 딴 반 다 갔다고요. 그딴 게 어딨어요?”

‘그딴 게’란 소리만 안 했어도 내 언성이 높아질 일은 없었을 것 같은데, 그 말이 나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딴 거? 하교 시간 다 같게 하기로 했으니까, 올라가 있어. 다른 반이 다 간다면 보낼거야!”

“다 가야 간다고요? 그딴 게 어딨어요!”

또다시 ‘그딴 거’라며 뒤돌아서 문을 쾅 닫고 나서는 W의 뒷모습을 보니 한숨이 나왔다. 대청소가 잘 되는 것을 보며 참 행복한 방학식이 되겠다고 여겼는데, 결국 방학식을 이렇게 망치는구나 싶었다. 그 때 교무부장님이 교무실에 들어서기에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혀를 끌끌 차신다.

“그러게 약속을 지켜달라고 당부했는데도, 누가 또 먼저 보내고 그랬대… 왜들 그러지….”

한탄만 하실 뿐, 해결 방안을 내놓지 않으시기에 당돌해 보이는 것을 무릅쓰고 말씀드렸다.

“부장님, 저 저희 반 보낼게요. 어느 담임은 보내고 어느 담임은 남기니, 다들 다르니 못 기다리겠어요.”

“어… 뭐, 그래야지. 그래요.”

이렇게 한두 명이 약속 어기는 것으로 흔들릴 약속이었다면 애초에 왜 그런 당부를 했었나 싶었다. 일괄로 봉사시간을 부여하는 것이 문제라면, 종례 후 1시간 남아 제대로 활동한 학생들에게만 부여하면 되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봉사시간이고 뭐고 신경 안 쓰고 떠나 빈 교실에서 담임들이 혼자 쓸고 닦고 할 모습이 충분히 상상은 가지만 말이다.


W와 승강이를 하고, 교무부장님과 대화를 나누고 올라가니 약속한 종례 시간이 거의 가까워져 있었다. 그렇게 담임의 여러 잔소리를 끝으로 아이들은 해방의 날을 맞이했다. 방학을 즐겁게 잘 보내라고 웃으며 인사하며 아이들을 보내고 교무실에 내려와 가만 있다 보니, W와 승강이의 마무리를 못 지은 것이 생각났다. ‘즐거운 날, 그냥 까먹고 놀게끔 둘까?’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사라지기도 전에 이미 나는 W의 전화번호를 찾아 수화기를 들고 있었다. 당연히 전화를 받지 않을 거라는 예측을 하면서.


“여보세요.”

“W야, 샘이다. 어디니?”

학교로 돌아와 이야기 좀 하자고 하려 했는데, W는 이미 학교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전화로 하는 훈계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내 말을 끊을 수가 없었다.

“W야. 아까 샘한테 ‘그딴 거’라고 말한 건 좀 그렇지 않더냐? 샘한테 할 말 없어?”

“아까 선생님이 ‘다른 반이 다 간다면’이라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그런 거예요.”

“난 내가 그 말을 하기 전에, 교무실에 들어오자마자 네가 먼저 ‘그딴 거’라고 해서 화가 났었다.”

“어? 정말요? 제가 먼저 그랬어요?”

“어. 그랬단다. 할 말 있니?”

“어… 샘, 그랬는지 몰랐어요. 샘, 죄송함돠.”

“응, 네가 먼저 말해주니 샘이 맘이 좀 풀리네. 아이구야, 고맙다.” (대체 뭐가 고맙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네, 샘! 저 애들이랑 사진 찍으러 가요.”

“어. 그래서 아까 머리 만졌구나? 멋있게 찍어.”

“네, 샘!” 까지가 전화 통화의 마지막이라 생각했는데, 뒤이어 한 마디가 더 있었다.

“쌤! 방학 잘 보내시고 만나요!”


한 학기를 보내고서야, W가 숱한 동성의 친구들이랑 부대끼며 걸어가는 와중에 담임과 통화하며 죄송하다고 말할 줄 아는 아이라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상황을 모면하려고 쉽게 내뱉는 말투가 아니었고, 뒤이어 따라온 방학 인사 덕에 죄송하다는 사과의 말이 좀 더 진심으로 느껴졌다. 잔소리를 하고 말리라,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 말리라 전화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스르륵 풀렸으니까 말이다.


이런 게 방학의 마법일까? 아이들은 평소 같지 않게 자기 몫 이상의 청소를 해내고, 들이박기만 좋아하던 W는 순순히 잘못했다며 용서를 빌고 안부 인사까지 전한 방학식날. 그저 날아갈 만큼 기분이 좋은 날이었기에 너그러워지고 부드러워진 것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 날 아이들이 숨기고 있던 따뜻함을 보았다. 매일 방학식만 같으면 좋겠다.


- 2015.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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