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크를 선택한 이유 Part.1

나는 왜 아이를 좋아하지 않을까

by 아보딩

아주 보통의 딩크로운 하루.

우리는 평범한 딩크 부부이다.

불임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근데 사실 검사를 받아본 적은 없어서 불임여부는 정확히 모르겠다.

다만 의도적으로 절대 아이를 낳는 일이 발생되지 않도록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다.


보통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걸 당연시 여기는 분위기(?)에서

내가 딩크부부인 이유에 대해서 정말 솔직하게 써보려고 한다.

딩크라는 우리에게 무례하게 구는 사람들한테는 적당히 얼버무리고,

애를 낳아야 한다는 둥,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사람들에게도 어느 순간 귀를 닫고 그러려니~하고 넘어간다.


내가 딩크를 선택한 이유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오늘은 첫 번째 이유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나는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보통 내 아이는 예쁘다고 하는데 나는 그럴 수가 없는 사람이다.

식당이나 카페도 가급적 내돈내산으로 갈 경우에는 무. 조. 건 노키즈존만 간다.

물론 부동산은 학군을 따져서 아파트를 분양받긴 했지만... 그건 돈과 관련된 거니 예외로 하자.

아무튼 기본적으로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말을 솔직하게 하면 나를 성격파탄자에...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고 내가 애들한테 해코지하거나 그런 사람은 전혀 아니다.

애들을 보면 어색한 미소를 짓고 아무 말도 못 한다.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무튼 내가 언제부터 아이들을 싫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아주 오래전부터 아이를 싫어했었다.

심지어 내가 아이였을 때도 나보다 더 어린아이들을 보면 싫어했었다.

질투 같은 감정은 아니었다.

그냥 다만... 내 생각에 아이가 있으면 불행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주 정확하고 솔직하게 표현하자면 나 자신을 싫어했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이런 말이 조심스럽지만 나는 결혼해서 행복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우리 엄마는 결혼을 이어가지 못했고, 우리 남매를 혼자 키워냈다.

21살에 나를 낳은 엄마는 어린 나이에 공장을 다니며 3교대 생산직을 하면서 힘들게 키웠다.

우리의 졸업식에 오지 못했고, 엄마가 연차나 휴가를 쓰는 걸 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힘들게 사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자랐다.

그리고 특성화 고등학교에서는 나처럼 한부모 가정 혹은 가정에 불화가 있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래서 나에게 결혼은 행복하지 않은 모습들이라 생각했고,

특히 아이가 있어서 더 불행해진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아직도 그런 생각을 해보고는 한다.

엄마는 왜 우리 남매를 버리지 않았는가.

우리가 없었다면 엄마가 더 행복해지지 않았을까 생각해보고는 한다.


나에게 요술램프가 있다면,

과거로 돌아가 엄마가 절대 결혼하지 않도록 우리 남매를 절대 낳지 않도록 할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없어지면 우리 남편이 좀 속상하긴 하겠지만,

엄마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감수하리라 생각한다.


가끔 엄마는 우리 때문에 행복한 적은 없었을까 궁금하긴 했다.

하지만 물어보지 않았다.

내가 지켜본 엄마의 모습 속 불행의 95%는 우리가 있어서라고 생각했으니까.

우리 남매를 잘 키워내는 것을 목표로 생각하며

일-집 이렇게 20년 넘는 시간을 일하니 당연히 몸에 고장이 나는 게 당연했다.

그렇게 젊은 시절 몸을 희생해 우리를 키워내고,

그 훈장으로 병마도 싸워낸 엄마를 보며 미안함과 함께 고마움

그리고 왜 그런 책임감을 가지고 힘들게 살았나 하는 안타까움 등... 많은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야 사회적 인식이 많이 달라졌지만,

내가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만 해도... 한부모 가정에 대한 인식은 그렇게 좋지 않았다.

그런 편견들을 이겨내고, 최선을 다해 우리를 키운 엄마의 희생을 생각해 보면 많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일까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아이를 위해서 희생해야 한다는 것도 싫고,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도, 얼마나 많은 희생을 해야 한다는 것도...

옆에서 그 누구보다 엄마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커서 그런지 나는 절대 아이를 낳아 키우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사실 내 아이가 태어나 나 같은 생각을 하며 엄마의 불행이 나 때문이라 여기지 않을까 싶어

두려운 마음도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찌 되었든, 32년을 살아오면서 아이가 좋다고 느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친구들이나 지인들의 아이를 보며 어색한 미소와 함께 "귀엽다" 한마디가 최선이다.


그래서 나는 딩크다.

아이를 좋아하지 않아서.

그게 첫 번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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