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춤의 자리에서, 복음을 만나다

1편] 차가운 형광등 아래에서, 다시 시작을 말하다

by 치유 보드미

청주 집 거실.

저녁 형광등 불빛이 바닥에 길게 눌어붙은 채 흔들리지 않았다. 그 아래, 엄마와 아빠와 나는 정자세로 마주 앉아 있었다.


몸 상태는 늘 그렇듯 좋지 않았다.

긴장하면 금세 손끝이 흔들려서, 말을 꺼내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그래도 오늘만큼은 나는 미리 적어둔 패턴 노트와 스케치들을 펼쳐놓고 말했다.


“엄마, 아빠… 나 이 옷을 만들려고.”


며칠 동안 동네를 돌며

어떤 연령대가 가장 많이 지나가는지,

어떤 실루엣에 사람들이 눈길을 주는지,

내 체력으로 움직일 수 있는 시간대가 언제인지

하나씩 분석했던 내용을 설명해 나갔다.

내가 만든 첫 계획은‘젊은 여성들용 원피스’였다

내가 입고 싶은 실루엣, 청주 사람들에게 어울릴 색감,

그동안 마음속으로 수십 번이나 그려온 패턴.

증상이 와서 누워 있어도

머릿속에선 계속 그 옷을 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엄마와 아빠의 표정은 내 설명이 길어질수록 굳어져 갔다.


“지희야, 동네에 옷가게가 얼마나 많은데…”

“요즘 누가 이런 걸 입니. 뜬구름 잡는 소리 하지 마라.”


그 말이 끝나자,

형광등 아래 공기가 갑자기 더 차가워진 느낌이었다.


나는 그 말이 섭섭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배신감 같았다.

힘을 얻고 싶어서 꺼낸 이야기였는데,

오히려 마음 한가운데를 꾹 눌러버린 듯했다.


그래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한 번은 해보고 싶어.”

“나 할 수 있어. 적어도 한 번은.”


대화는 거기서 멈췄다.

부모님의 시큰둥한 표정도 멈췄다.

하지만 내 마음은 멈추지 않았다.


그날 이후, 나는 정말 만들기 시작했다.

몸이 버티지 않는 날에는 하루 종일 누워 있었고,

조금 괜찮은 날에는 천천히 일어나 패턴을 그리고, 재단하고 바느질을 반복했다.


손이 떨릴 때도,

‘지금 멈추면 오늘 하루가 사라진다’는 생각으로 머릿속에서 패턴을 계속 이어 붙였다.


그렇게 두 달.

내가 할 수 있는 속도로,

내가 버틸 수 있는 방식대로 만든 옷들이 쌓여갔다.


두 달 뒤, 드디어 나갔다.

마네킹 하나, 행거 하나, 그리고 내가 만든 옷 여러 벌을 들고 골목 입구로 나갔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지나는 시간대를 계산한 끝에 늦은 오후 타이밍을 골랐다.


마네킹엔 가장 예쁘게 나온 원피스를 입혀 세워두고, 나는 모퉁이에 조용히 서 있었다.

마치 그냥 산책 나온 사람처럼.


그러자 뒤에서 엄마가 따라 나왔다.

아픈 딸이 걱정돼서였을까.

표정은 한껏 굳어 있었고,

길 모퉁이에 의자를 놓고 앉아 계속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 산책 나온 젊은 부부가 멈춰 섰다.

아내가 옷자락을 조심스레 만져보길래

나는 얼른 다가가 말을 건넸다.

“언니, 사이즈 어떤 거 입으세요?”

거울 앞에 대보며 아내가 남편에게 말했다.

“오빠, 이거 예쁘다. 어때?”

그리고 나에게 물었다.

“언니, 이거 얼마예요?”

나는 최대한 환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언니 마음에 드세요? 두 벌 하시면 기분 좋은 가격 드릴게요.”

그 말에 아내가 눈을 반짝였다.


“진짜요? 그럼… 세 벌주세요!”


그 순간, 나는 잠시 얼었다.

팔 생각만 했지 봉투도, 잔돈도 준비하지 않았던 것이다.


엄마가 급히 옆 가게에 뛰어가 사정을 이야기했다.

그 옷가게 사장은 나를 곱지 않은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 표정마저 잊지 못한다.


결국 손님은 계좌 이체를 해줬고,

그때 마침 증상이 슬슬 올라오고 있었다.

엄마는 급히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아빠는 집에서 잔돈을 챙겨 뛰어나왔다.

내 옆으로 오더니 순간 멈춰 섰다.

떨리는 내 손을 보고

아빠 눈시울이 붉어졌다.


“우리 딸… 잘했다. 정말 잘했어.”

그러면서 나를 부축해 안아주었다.


나는 숨을 고르며 말했다.


“아빠, 오늘 20만 원 넘게 벌었어. 내가 먹힌다고 했잖아.”


“그래, 그래. 대견하다. 얼른 들어가자.”


아빠 그 말 한마디에 두 달 동안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버텨왔던 시간들이 한순간에 인정받는 기분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엄마와 나는 얼마를 팔았는지,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얘기를 나눴다.

엄마도 의외로 놀란 표정이었다.


손끝은 여전히 떨렸지만

그날의 공기만큼은 묘하게 따뜻했다.


그날, 나는 비로소
두 달 동안 아무도 몰랐던 노력이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다는 걸 처음 느꼈다.

손끝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묘하게 마음 한쪽이 단단해졌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자리에서, 내가 다시 살아나는 소리가 아주 작게 들렸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이것이 끝이 아니라,
내가 다시 ‘시작하는 자리’라는 것을.

<글쓴이 한마디>

독자님께 묻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이 언제였나요? 지금 그 마음을 저에게도 들려주세요.
지희 드림.


* 그리고 이 이야기는 아직 끝이 아닙니다.
오늘도 내 곁에서 기다려준 승리, 그리고 내가 다시 용기를 내게 만든 그 순간의 이야기.

다음 편 ‘두 번째 길거리 작업실, 그리고 승리’에서 이어갈게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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