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말씀만이 진짜 치유가 되는가
우리는 아플 때 치료법을 찾지만,
하나님은 먼저 치유의 근원을 바꾸신다.
* 재가 약이 될 때, 재앙이 될 때
— 말씀만이 치유가 되는 이유
우리는 아프면 자연스럽게 치료 방법을 찾는다.
병원을 찾고, 약을 먹고, 더 좋은 방법을 알아본다.
그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성경에는 조금 낯선 장면이 등장한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풀무의 재를 하늘을 향해 날려 보내라고 말씀하신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재는 원래 애굽 사람들이 치료에 사용하던 것이었다.
사람을 낫게 한다고 믿었던 재였다.
하지만 하나님이 그것을 흩으셨을 때,
그 재는 오히려 독종이 되어
사람과 가축, 심지어 애굽의 술사들까지 괴롭게 만들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우리가 의지하던 것이 무너질 때
당시 애굽은 의술이 가장 발달한 나라였다.
병을 고치고 미래를 점치던 술사들은
사람들에게 거의 ‘의사’와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그들조차
자신들에게 닥친 재앙을 막지 못했다.
성경은 조용히 말한다.
인간이 만든 시스템은
몸의 문제 일부는 해결할 수 있어도
죄와 죽음의 근본 문제는 해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환경이 바뀌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방법을 바꾸면 인생이 나아질 거라고 믿는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의 두려움,
설명되지 않는 공허함,
반복되는 상처는
다른 차원의 치유를 필요로 한다.
말씀은 ‘정보’가 아니라 ‘수술’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표현한다.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갠다.”
말씀은 좋은 글이나 위로의 문장이 아니다.
우리 안을 진단하고 수술하는 능력이다.
겉으로 괜찮아 보이던 삶 속에 숨겨진
두려움, 죄책감, 상처, 교만을 드러내고
새롭게 만지신다.
그래서 진짜 치유는
겉을 고치는 일이 아니라
근원을 바꾸는 일이다.
치유는 십자가에서 시작된다
성경은 말한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우리가 하나님과 멀어져 있었을 때,
이미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상처를 받으셨다고.
그분이 찔리심으로
우리에게 평안이 오고,
그분이 채찍 맞으심으로
우리에게 치유가 임했다.
치유는
내가 강해져서 얻는 결과가 아니라
이미 주어진 은혜를 받아들이는 순간 시작된다.
이름을 부르는 믿음
예수님은 단순한 종교의 상징이 아니라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기 위해 오신 분이다.
그래서 성경은 말한다.
그 이름을 부르라고.
의지할 곳이 없을 때,
몸과 마음이 무너질 때,
그 이름을 붙잡으라고.
믿음은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다시 그 이름을 부르는 작은 선택에서 시작된다.
* 치유의 사람으로 살아가기
치유는 끝이 아니다.
새로운 시작이다.
하나님은 치유받은 사람을
다시 세상 속으로 보내신다.
빛을 비추는 사람으로,
회복의 증거가 되는 사람으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아가도록.
그래서 오늘의 기도는 이것이다.
내 삶이 건강해지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누군가에게 소망이 되는 삶이 되게 해달라고.
치유는 개인의 회복을 넘어
세상을 밝히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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