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1장 13–24절 / 진주강단 주일말씀 정리
예배 가운데 이런 마음이 들었다.
“내 모습 이대로도 주님이 받아주셨다.”
사실 나는 나 같은 사람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변덕스럽고, 연약하고,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때로는 내 자신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모습이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나를 버리지 않으셨다.
오히려 쓸모없던 가지 같던 나를 받아
영광스러운 가지로 바꾸셨다.
오늘 말씀은 바로 그것을 말한다.
원래는 돌감람나무 가지였던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참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1. 하나님은 쓸모없던 가지를 영광스러운 가지로 바꾸신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이방인의 사도”라고 말하면서
그 직분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영광스럽다고 고백한다.
원래 유대인의 입장에서 보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은 결코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바울은 달랐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버려진 것처럼 보이는 이방인에게도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고,
그들을 통해 다시 유대인 중 남은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큰 계획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은혜다.
우리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이유는
우리가 본래 괜찮은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원래는 돌감람나무 같은 존재였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꺾어 참감람나무에 접붙여 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내가 잘나서 된 내가 아니다.
전적인 은혜로 된 나다.
2. 뿌리가 바뀌면 신분이 바뀐다
본문의 중요한 비유는 이것이다.
원래 우리는 돌감람나무였다.
열매를 제대로 맺을 수 없는 가지였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런 우리를 잘라
참감람나무에 접붙이셨다.
이 말은 단순히 위치만 바뀌었다는 뜻이 아니다.
뿌리가 바뀌었다는 뜻이다.
뿌리가 바뀌면
올라오는 진액이 바뀌고,
생명이 바뀌고,
결국 열매도 바뀐다.
예전에는
창세기 3장, 6장, 11장의 뿌리,
곧 하나님을 떠난 뿌리,
죄와 저주와 불신앙의 뿌리에 묶여 살았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의 뿌리, 은혜의 뿌리, 언약의 뿌리,
성령의 뿌리에 접붙임 받았다.
그러므로 신자는 과거의 뿌리로 자신을 해석하면 안 된다.
내 환경, 내 성격, 내 상처, 내 가문 문제가
나의 본질이 아니다.
내 진짜 뿌리는 그리스도다.
3. 자랑할 것은 내가 아니라 뿌리다
바울은 분명히 경고한다.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
네가 뿌리를 보존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존하는 것이니라.”
이 말씀은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하나님을 오래 믿었다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다고,
예배 자리에 앉아 있다고,
누군가보다 더 깨달은 것 같다고
교만해질 이유가 전혀 없다.
왜냐하면
내가 나를 붙들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살리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나를 거룩하게 만드는 것도 아니다.
뿌리가 나를 살리고,
뿌리가 나를 보존하고,
뿌리가 나를 열매 맺게 한다.
그래서 자랑할 것이 있다면
내가 아니라 복음이다.
내 결심이 아니라 은혜다.
4. 우리의 진짜 문제는 말씀에서 답을 찾지 않는 것이다
구원받은 사람에게도 문제가 있다.
그 문제는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배운 것이 없어서가 아니다.
성격이 부족해서만도 아니다.
진짜 문제는
오직 말씀에서 답을 찾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참감람나무에 붙어 있다.
이미 생명의 뿌리에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세상 소리, 사람 말, 현실 조건 속에서만 답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신자의 답은 거기에 없다.
하나님이 오늘 내게 주시는 말씀 속에 있다.
어떤 문제가 있어도
먼저 말씀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상황보다 먼저 언약을 붙잡아야 한다.
그러면 당장 눈앞의 변화가 없어 보여도
하나님은 그 말씀을 따라 반드시 역사하신다.
신앙은
내 생각이 맞는지 증명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맞다는 것을 따라가는 삶이다.
5. 우리의 진짜 문제는 기도에 답이 없는 것이다
말씀에 답이 없으면 흔들리고,
기도에 답이 없으면 메말라간다.
본문이 말하는 접붙임의 은혜는
한 번 붙었다는 사실로 끝나지 않는다.
그 뿌리에서 올라오는 진액을
계속 공급받아야 한다.
그 진액이 무엇인가.
말씀의 진액, 복음의 진액, 은혜의 진액,
그리고 기도를 통해 누리는 성령의 역사다.
우리가 약한 이유는
뿌리가 약해서가 아니다.
공급을 받지 못해서다.
하나님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시고,
모든 힘의 근원이시며,
모든 회복의 근원이시다.
그 하나님께 접붙임 받은 우리가
왜 무너지는가.
기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도는 종교 행위가 아니다.
기도는 뿌리와 연결되는 시간이다.
기도는 진액이 올라오는 통로다.
기도는 임마누엘을 실제로 누리는 길이다.
그래서 신자의 답은 결국 이것이다.
“기도가 답이다.”
6. 접붙임 받은 가지는 아무도 꺾을 수 없다
하나님이 우리를 참감람나무에 접붙이셨다면
그 관계는 사람이 끊을 수 없다.
그리스도 안에서
죄의 뿌리, 사탄의 뿌리, 지옥의 뿌리는
이미 끊어졌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하셨을 때,
우리에게 흐르던 저주의 근원은 끊어졌다.
그러니 신자는
자꾸 과거의 뿌리로 돌아가려 해서는 안 된다.
이미 잘려 나왔는데
왜 다시 거기로 돌아가려 하는가.
불신앙은 내 본성이 아니다.
두려움은 내 정체성이 아니다.
절망은 내 원래 자리처럼 보여도
이제는 내 자리가 아니다.
나는 이미
그리스도께 접붙임 받은 사람이다.
7. 그러나 하나님과의 교제는 끊길 수 있다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신다.
그러나 신자가 말씀과 기도를 놓치면
하나님과의 교제는 끊길 수 있다.
이것이 본문이 말하는 경고의 뜻이다.
관계가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교제가 끊어지는 것이다.
그러면 은혜가 메말라간다.
말씀이 들리지 않는다.
기도응답이 막힌 것처럼 느껴진다.
영적 상태가 바싹 마른다.
그래서 바울은 말한다.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두려워하라.”
이 두려움은 구원을 잃을까 봐 떠는 공포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높이지 않는
거룩한 경외심이다.
8.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함께 보라
하나님은 사랑만 있는 분도 아니고,
엄격함만 있는 분도 아니다.
하나님 안에는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이 함께 있다.
겸손히 은혜를 구하는 자에게는
한없는 인자하심으로 다가오시지만,
교만하고 완고한 마음에는
준엄하게 다루신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계속 겸손해지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이 어떤 존재였는지를 잊지 않는다.
자기 연약함을 안다.
그래서 남을 정죄하기보다 이해하게 된다.
높은 마음은
늘 남을 판단하게 만든다.
하지만 복음이 분명한 사람은
“나도 은혜 아니면 안 되는 사람이었지”
를 알기 때문에남을 나보다 낫게 여길 수 있다.
9. 신앙생활은 결국 각인, 뿌리, 체질이 바뀌는 것이다
접붙임은 단회적 사건이지만,
그 이후의 신앙생활은
각인과 뿌리와 체질이 바뀌는 과정이다.
예전 돌감람나무의 체질대로 살면 안 된다.
이제는 참감람나무의 본성을 따라 살아야 한다.
곧,
복음이 내 생각에 각인되고
그리스도가 내 삶의 뿌리가 되고
기도와 말씀 속에서 내 체질이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풍파가 와도 흔들리지 않는다.
비바람이 쳐도 꺾이지 않는다.
문제가 와도 본질을 잃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생명의 뿌리에 연결된 가지이기 때문이다.
* 맺으며
오늘 말씀은 내게 분명히 알려준다.
나는 원래 돌감람나무였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를 잘라
참감람나무에 접붙여 주셨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버려진 가지가 아니다.
쓸모없는 가지가 아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영광스러운 가지다.
그러므로 이제 내 신앙은
다시 옛 뿌리로 돌아가는 삶이 아니라,
새 뿌리에서 올라오는 진액을 날마다 공급받는 삶이어야 한다.
말씀으로 답을 얻고,
기도로 힘을 얻고,
복음 안에서 각인·뿌리·체질이 바뀌는 삶.
그것이
접붙임 받은 가지의 삶이다.
ㆍ
그리고 그 길 끝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반드시 열매를 맺게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