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나는 왜 운동을 가르치지 않는가

움직임은 가르쳐질 수 있는 것일까?

by 김두연

나는 "운동을 가르친다"는 표현을 거의 쓰지 않는다.
가끔 누군가 나를 운동 선생님이라고 부를 때면
조금 낯설게 느껴진다.

그건 단순한 직함의 문제가 아니다.
운동은 스스로를 감지하고 인식하고 회복하는 '내면의 흐름'이기 때문이다.


내가 만나는 많은 사람들은
몸이 아파서 오는 것뿐 아니라,
"내 몸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는 상태"로 찾아온다.

운동 경험이 없는 사람,
몸을 쓰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몸에 새겨진 사람,
혹은 자신의 신체 구조나 감각을 처음 자각하는 사람까지.

이들에게 나는 운동을 알려주는 사람이 아니라
'몸을 다시 느끼도록 돕는 사람'에 가깝다.


'나만의 좋은 움직임'은 거울 앞에서 동작을 따라 하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시각 정보를 넘어 몸 안에서 발화되는 감각 하나하나를 느끼며 움직일 때,

비로소 '나만의 좋은 움직임'은 완성된다.

그 순간부터 움직임은 몸을 쓰는 기술이 아니라 몸으로 말하는 나만의 언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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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수업의 시작은 언제나 감각이다.
바닥에 닿아 있는 발과 발가락의 감촉,
무릎을 굽히고 펼 때 느껴지는 근육의 수축감,
관절의 긴장감(텐션),
그리고 그 모든 움직임을 잇는 호흡까지.

이 감각들을 하나하나 다시 읽어낼 수 있을 때,
움직임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흐르기 시작한다.
나는 그 흐름을 기억나게 도와줄 뿐이다.

그 지점에서, 몸과 마음의 재활이 동시에 시작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운동을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대신 묻는다.


"지금, 어떤 감각이 느껴지나요?"


그 질문 하나가
내 몸과 다시 연결되는 시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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