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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의 시작

25살 사회초년생 독립하다

by 보은

내 첫 독립은 일본에서였다. 대학교 3학년, 교환학생으로 떠난 일본의 작은 마을 내의 기숙사에서 1년을 보냈다. 21살에 부모님 없이 지낸 생활은 생각보다 좋았고 새로 사귄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재밌었다. 하지만 기숙사비도 생활비도 온전히 부모님에게 받았기 때문에 완전한 독립은 아니었다.


그렇게 다시 한국에 들어왔다 대학교를 졸업하곤 다시 일본으로 떠나 도쿄 셰어하우스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일본 생활에 미련이 남아 워킹홀리데이로 떠난 거였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6개월만에 생각보다 금방 돌아오게 된다. 3평밖에 안 되는 작은 방에서 60만 원이나 되는 월세를 내고 사는 건 내 상상보다도 못 할 일이었다. 그나마 좋은 점은 공용 욕실이 깨끗하고 넓었다는 점이랄까. 나는 그렇게 또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부모님 밑에서 사는 게 가장 좋은 일이구나를 그 당시 깨닫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취업을 했고, 회사와의 거리가 자그마치 왕복 3시간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취업 후 몇 개월 정도는 다닐만했다. 친한 동료가 그 정도 거리면 자취집을 구하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해 왔지만 정말 꿋꿋이 버티면서 10개월을 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체력이 대단했다. 그리고 그 해 12월에 나는 자취집을 구했다.


계기는 지금 생각하면 어이가 없지만, 그 당시 만나던 남자친구였다. 내가 부모님과 사는 게 불편했던 건지 혹은 본인이 더 자유롭게 만나고 싶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옆에서 자취를 하면 좋은 점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왕복 3시간이 지친다고 생각하던 찰나에 옆에서 채근하니 '한번 알아나 볼까' 했던 가벼운 시작이 흘러 흘러 계약까지 갔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 역시 자취 시작의 가장 큰 걸림돌은 비용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국가정책을 잘 찾아보니 활용할 수 있는 대출이 있었다. 당시 내가 알아본 대출은 중소기업청년전세대출이었는데 1억의 1%, 즉 10만 원에 전셋집을 구할 수 있는 상품이었다. 10만 원이면 할만한대?라는 생각을 가진 당시의 나는 무턱대고 다방, 직방을 통해 매물을 보고 연락을 돌렸다.


하지만 맘처럼 내가 생각한 10만 원에 전셋집 구하기는 생각 외로 어려웠다. 나는 중소기업청년전세대출 100% 상품 즉, 1억 한도중 100%인 1억을 대출받고자 했었고 그러기 위해선 건물에 대한 융자가 없는 집을 구해야 했다. 이때 집을 알아보면서 알게 되었는데 오피스텔을 융자 없이 가지고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연락을 돌렸던 부동산 20곳 중 3곳 정도만 매물을 보여줬고, 17곳 정도는 답변이 없거나 100% 중기청은 못 구할 거라는 부정적인 답변을 받았다. 심지어 몇 곳은 80%로 받을 수 있는 매물을 거절했더니 역성을 내기까지 했다.


나는 긍정적인 답변을 준 부동산 2곳 중 내가 구하고 싶은 조건과 비슷한 집을 보여 줄 수 있는 곳에서 일요일에 집을 보기로 했다. 하지만 몇 곳을 봐도 맘에 딱 와닿는 곳이 없었다. 그래서 일단 그날에는 둘러보기를 그만두고 조금 시간의 여유를 가지고 둘러보기로 했다. 그렇게 일주일도 안 지난 시점에 중개사님이 괜찮은 곳이 있는데 보러 올 수 있냐는 곳이 있었다. 내가 원하는 역세권, 오피스텔 그리고 100%가 가능한 융자 없는 오피스텔이었다. 점심시간에 갔다 올 수 있을 만큼 회사 하고도 가까웠다. 집은 실제로 보니 마음에 들었다. 원룸에 혼자 살기 좋은 크기였고 해도 적당히 잘 들었다. 문제는 내가 자취 계획을 부모님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왜 그랬나 싶은데, 그때까지만 해도 '자취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면 '그래 그렇구나 잘 나가 살렴'이라고 말해 주실 줄 알았다. 적어도 그 시점이었던 25살까지는 나는 부모님과 그렇게 지내왔다. 그래서 ' 자취를 하고 싶어서 집을 알아봤고, 원하는 집이 나왔고, 중소기업청년전세대출을 받아서 이만큼의 돈이 들 거고 12월 즈음 나가 살겠습니다'라고 당당히 말씀드렸다. 그러자 부모님은 이미 알아볼 대로 알아보고 나간다고 하니 어쩔 수 없지라며 허락은 해주셨지만 섭섭해하셨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부모님이 섭섭해하신다는 것도 알아보지 못했던 거 같다. 그렇게 어영부영 설렘반 걱정 반, 내 자취의 첫걸음이 시작되려고 하고 있었다.


그렇게 부모님께 강요 아닌 허락을 받고 집을 계약하려고 연락을 하니, 마음에 드는 매물은 이미 계약이 되어버렸다. 처음으로 집이 나를 마냥 기다려주는 건 아니구나를 배웠다. 다행인 건 오피스텔은 12층에 10세대가 넘는 곳이었고, 1주 정도 지나서 또 다른 매물이 나와서 계약을 할 수 있었다. 지금이야 이렇게 덤덤히 이야기하지만 그 당시에는 피가 마르는 일주일이었다.


계약서를 쓰기 위해 공인중개사분과 집주인이 있는 곳으로 찾아갔다. 알고 보니 집주인분은 자취집 옆 동네에서 부동산을 운영하고 계신 공인중개사분이었다. 혼자 계약서를 쓰러 간다는 딸이 걱정 됐는지 아버지가 계약하는 곳으로 찾아왔다. 25살의 나는 참 거침이 없었다. 그리고 부모님의 걱정과는 달리 생각보다 큰 문제없이 첫 전셋집 계약을 끝맺었다.


처음 구한 전셋집에서 2년을 살고 재계약도 해서 1년, 총 3년을 살고 나오게 되었다. 결혼이라는 인생에 큰 변환점을 맞이해서 나오게 된 경우라, 좋은 기억만 가득 안고 그 집과 이별할 수 있었다. 나와 같이 첫 독립을 고민하고 있는 사회 초년생들에게 나처럼 흐름에 맡기다 보면 어영부영 나오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보다 별거 없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용기를 가지고 독립했으면 좋겠다고 전하고 싶다. 더불어 나와 같은 실수는 하지 말길 바라며, 부모님에게 잘 설명드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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