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주고받는 연애란, 참 어렵다
이렇게 빨리 고백한다고?
나는 남편과의 두 번째 만남에서 고백을 받았다. 처음 만난 지 일주일 만이다. 처음 만난 후 일주일 만에 본 우리는 살짝의 어색함과 함께 건대입구에 있는 한 이자카야에서 만났다. 어색하니 한잔 두 잔 들어간 술은 자리를 옮겨서 2차까지 이어졌고, 분위기가 무르익어 술김에 고백을 받게 되었다. (이 부분은 지금까지도 남편 놀림감 베스트 사건으로 꼽힌다.)
나는 이 고백이 썩 달갑지 않았다. 이미 끝난 전 연애들의 첫 시작도 취중고백이었고, 나는 이에 대한 회의감이 가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끝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음날 어느정도 시간이 지난 후 "저희 만나는 게 맞나요? 기억해요?"라고 묻자 기억한다는 그의 말에, 얼렁뚱땅 남편이 될 그와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다.
시작이 얼떨떨해서 인지 몰라도, 고백을 받은 이후에도 나는 좀처럼 마음을 열기가 힘들었다. 나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보이는데 이 노력이 진심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도리가 없었다. 만나면서도 이런 마음으로 계속 만남을 이어가도 되는 건지 의구심이 들었다. 사람의 호의나 호감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는 내 불신감은 어릴 적부터 겪은 사람 간의 트라우마가 원인이다. 마음을 준 만큼 나에게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조금 어린 나이에 깨달았고, 좋은 걸 좋다고 온전히 표현하기 힘든 어른으로 자라났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연애도 별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방의 마음을 받으면서도 나에겐 언제나 나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방어선이 있다. 여기 안에 있는 내 감정과 생각은 그 누구에게도 내비치지 않고 살아왔다. 상대방이 내가 준 만큼 마음을 돌려주지 않아도, 내 방어선 안의 마음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큰 상처는 입지 않는다. 나 스스로가 무너지지 않게 지켜온 방어기제 중 하나라 볼 수 있다.
남편은 이런 내 방어기제를 아는지 모르는지 무던하고 꾸준하게 마음을 표현했다. 정말 10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더니 (물론 아닌 건 아닌 거다) 내 상황에는 맞는 속담이었다. 한결같은 애정을 주는 남편 덕에 어느새 나도 내 생각이나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내 모습이 꽤나 맘에 들었다.
한참 즐겨봤던 환승연애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그중 한 커플인 종은 X광태가 헤어지게 된 이유가 여럿 있겠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사랑해'라는 말을 듣지 못해서가 계기라고 한다. 광태는 사랑해라는 말이 듣고 싶었고 종은은 그 말이 미래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 말이라고 생각해서 할 수 없다고 한다. 이 커플을 보면서 연애 초반의 내가 생각났다.
남편은 연애 초반부터 사랑한다는 말을 매일같이 정말 자주 했다. 그런데 나는 사랑한다는 말을 입 밖으로 뱉는 게 너무 어려웠다. 그때 가진 내 생각은 이러했다. '지금 하는 사랑 해라는 말이 진짜로 내가 사랑을 해서 하는 말인 걸까? 그냥 의무적으로 하는 말이 아닌가? 아직 얼마 만나지 않았는데 사랑한다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는 거지? 사랑한다는 말의 의미도 모르는데 이걸 전해도 되는 걸까?'라는. 지금 생각하면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표현을 아껴서 나쁠 건 하나 없는데 겁이 참 많았구나 싶다.
이런 내가 마음을 고쳐 먹은 건 다름 아닌 남편의 끊임없는 표현이었다. 계속되는 애정에 나도 어느 순간 사랑을 베풀 수 있게 되었달까. 내 마음을 내어주면 나중에 상처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고, 이런 두려움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방어기제를 사용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꾸준한 애정을 통해 내가 마음을 줘도 상처를 받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기고, 두려움이 사라지자 점차 남편에게는 나의 방어적인 모습이 차차 사라졌다.
그리고 연애 후 1년이 넘은 어느 순간 결혼 해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