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어디를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가느냐가 더 중요하다. 여행에 대한 목적이나 가치관이 틀리면 하루 내내 지루하고 힘들 수도 있다.
주변 경관을 감상하고 그곳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가진 친구가 좋다. 가는 곳마다 사진만 찍어달라는 일행은 민폐다. 쇼핑에만 관심을 갖는 부자 사모님도 민망하지만, 걷기를 싫어하고 차 안에서 다 해결하려는 레이지 걸도 곤란하긴 마찬가지다.
그런데 오늘 나에게는 행운이 찾아왔다.
아들과 느긋이 커피타임을 갖는데, 엘에이 사는 글 벗이 초대를 한다.
캘리포니아 주 대나 포인트(Dana point)에 있는 리츠칼튼 호텔로 나오라는 전화다.
마침 휴일인 데다, 아들이 그쪽으로 갈 일이 있다고 데려다준다니 금상첨화다.
아들이 리츠칼튼에 가는 1번 도로는 캘리포니아 주의 태평양 바다를 감싸고 있는 해안 길로 남쪽으로는 샌디에이고까지 북쪽으로는 101번으로 바뀌면서 오리건 주까지 연결되는 도로란다.
산타모니카 비치, 말리브 비치, 롱비치, 헌팅턴비치도 이 도로 선상에 있으니 시간이 허락하면 가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거라고 부추긴다.
뉴포트 비치, 라군나 비치도 멋진 볼거리니, 오늘 못 보면 다음에 자기가 안내하겠다고 언제 지킬지 모르는 약속을 자신 있게 떠벌린다.
글 벗과 기쁜 해후를 마치고, 코스로 나오는 우아함의 극치를 맛보며 식사를 즐긴다.
특히 갓 구운 연어 스테이크는 너무나도 부드러워서, 연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던 내가 바로 연어 마니아가 되었다.
집에서 오븐에 구어 보면 좀 딱딱해 져서 맛이 별로였는데, 요리하기에 따라서 이렇게 맛있기도 하니 반성이 절로 된다.
직원에게 연어 스테이크가 베스트라고 어떻게 굽는지 알려줄 수 있느냐고 했더니, 땡큐를 연발하며 연어 요리사를 모셔온다. 장황하게 설명하였지만 다 알아듣지 못하니 안타까울 뿐이다. 친구의 통역에 의하면 자기네들만의 소스에 담갔다가 가열된 팬에 살짝 앞뒤로 겉만 살짝 익혀서 180도 오븐에 15분 굽는데, 좋은 연어와 신선도가 우선이란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던가. 엄지 척을 받은 요리사가 서비스로 화이트와인을 두 잔 내와서 정중히 답례하니, 대접받는 즐거움과 기쁨으로 어깨에 힘이 실린다.
디저트로는 아이스크림과 오렌지 주스와 과일이다. 특히 과일 플레이팅은 아름다워 먹기가 아깝다. 먹는 내내 감동이다. 창밖으로는 비췻빛 바다가 멀리까지 보이는 절경이 더욱 행복하게 한다. 왕후의 대접이 따로 있으랴. 내가 오늘 바로 왕후이거늘.
식사를 끝낸 우리는 바닷가로 내려갔다. 많은 사람이 선탠을 즐기고 모래성을 쌓기도 한다. 우리 둘도 샌들을 어깨에 걸치고 물에 뛰어들었다.
친구가 큰소리로 “파도 소리 들리는 쓸쓸한 바닷가에~ ”하고 노래를 불러 젖힌다. 솔직히 그리 잘 부르는 솜씨는 아니어서 쿡쿡 웃음이 나왔으나, 나와 비교하면 도긴 개긴 처지이니 나도 자신 있게 큰 소리로 따라 불렀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지만, 이 순간 해변은 넓고 사람은 적으니 가능한 일이다.
“내 귀는 소라, 바닷소리가 그리워~” 시 낭송도 하며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한참을 어린아이가 되었다. 마지막에 그녀가 나의 살던 고향을 부를 때는 울컥해서 따라 부를 수가 없다. 고급문화와 더 나은 삶을 위해 태평양을 건너 멀리 이민을 왔지만, 불쑥불쑥 그리운 고향 생각은 어쩔 도리가 없는 거다.
거대한 태양이 바다로 들어가는 이곳의 썬셋(sunset)을 기다리며 그동안 밀린 수다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우리는 서로의 눈동자가 빨갛게 물들었을 때야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