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평 역사 한옥 박물관

하피첩(霞帔帖)을 보고 와서

by 소봉 이숙진
하피첩1.png



하피첩(霞帔帖)을 보고 와서


국제 펜 한국본부에서 주관하는 서울시 문학기행에 참여하여 은평 역사 한옥박물관에 갔을 때다. 마침 <다산 하피첩, 은평에 오다>라는 특별전을 열고 있었다. 하피첩은 노을빛 치마로 만든 소책자를 일컫는다. ‘하피(霞帔)’라는 것은 중국 당나라 시대부터 신부가 입던 예복이다. 조선 시대에는 비(妃)와 빈(嬪)이 입는 법복(法服)이기도 했다.

다산 정약용이 천주교를 믿었던 죄로 전남 강진으로 귀양 갔을 때다. 귀양 10년이 되든 해, 홀로 집안을 꾸려가야 했던 부인 홍 씨는 붉은 치마에다 남편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담아 글을 써서 보냈다.



매조도5.jpg

집을 옮겨 남쪽으로 내려가 / 끼니라도 챙겨 드리고 싶으나

해가 저물도록 병이 깊어져 / 이내 박한 운명 어쩌리까

이 애절한 그리움을 / 천 리 밖에서 알아주실는지

다산은 그 치마를 오려 두 아들에게 격려와 당부의 글을 써서 네 권의 필첩을 만들고, 시집간 딸에게 매조 도를 그리고 시를 곁들여 주었다.

이것이 <하피첩>과 <매화병제도>이다.


매조도4.jpg


매조도3.jpg

‘병든 아내가 해진 치마를 보내왔네.

천 리 먼 곳에서 애틋한 마음을 담았네

오랜 세월 치마는 붉은 노을빛으로 바래서

마치 초췌한 내 모습 같아 서글퍼지는구나.

정성껏 마름질하여 작은 책을 만들어

자식들에게 일깨워주고자 몇 자의 글을 적는다

부디 이 아비의 마음을 잘 헤아려

평생 가슴속에 새기도록 하여라.’

< 가경 경오년(1810) 9월 다산의 동암에서 쓰다. >


그 하피첩을 한글로 해석한 걸 적어 본다.

‘나는 지금 벼슬을 하지 않아 너희에게 물려줄 것이 없다. 그러나 가난을 구제하고 삶을 넉넉하게 할 두 글자 부적을 줄 것이니 너희들은 소홀히 여기지 말거라.


매조도8.png
매조도4.jpg
매조도.png

하나는 ‘근(勤:부지런함)’이다.

다른 하나는 ‘검(儉:검소함)’이다.

‘근검’ 이 두 글자는 전답보다 좋은 것이어서 평생 쓰고도 남을 것이다. 또 한 가지는 부끄러울 게 없는 도덕적 용기를 가지라고 당부했다.

‘대장부의 마음가짐은 마땅히 비 갠 뒤의 맑은 바람과 밝은 달과 같아서 털끝만큼도 거칠 거나 가리는 것이 없어야 한다. 무릇 하늘과 남에게 부끄러운 짓은 칼로 끊은 듯이 범하지 않아야 자연 마음이 넓어지고 몸에는 공명정대한 기운을 가지게 될 것이다. 만약, 한 자의 베나 몇 푼 재물에 끌려 마음을 저버리는 일이 있게 된다면 기운이 위축되어 무너지고 말 것이다.’

다른 하나는 당파를 짓지 말라는 거다.

‘우리 가문은 선대부터 당파를 짓지 않았다. 더구나 우리가 곤경에 처하여 옛 친구들이 연못에다 밀고 돌까지 던지는 경우를 당했다. 너희들은 명심하고 편당 하는 사사로운 마음을 철저히 버려야 한다.’

어머니 치마에 아버지의 사랑을 담아 쓴 글씨. 세상에서 이보다 값진 보물이 있을까. 다산이 외동딸에게 그려준 매화와 새를 그린 매조도 또한 감동이다. 그림 아래쪽에는 시 한 편을 적었다.

저 새들 우리 집 뜰에 날아와


매조도.png

매화나무 가지에서 쉬고 있네

매화 향 짙게 풍기니 그 향기

사랑스러워 여기 날아왔구나

이제 여기 머물며

가정 이루고 즐겁게 살거라

꽃도 이미 활짝 피었으니

주렁주렁 매실도 열리겠지

매화와 새 그림은 처연하지만, 시의 메시지는 희망적이다. 여덟 살짜리 딸을 남겨두고 기약도 없는 유배 생활을 하던 중 그 딸이 출가했다. 아비의 미어지는 가슴을 안고 애틋한 부정을 담아 그림을 그렸을 거다.

유배객의 곤궁한 삶이 그대로 전해온다. 노을빛 치마에 얽힌 절절한 사랑 이야기는 200년의 세월을 넘어 오늘날 우리 가슴을 잔잔히 적신다.

하피첩에 담긴 부모의 마음은 우리 마음속에 살아 숨 쉰다. 세상의 모든 부모는 가족의 사랑 안에서 자녀들이 바르게 자라기를 바랄 것이다.

필자는 하피첩 앞에서 자리를 뜨지 못하고 휘우듬하게 서서 세세상전(世世相傳) 전해오는 이 감동적인 앱(APP)을 마음 밭에 곱다랗게 깔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미국 LA 라군나 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