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관사

진관사에 숨겨졌던 태극기

by 소봉 이숙진
진관사15.png 진관사에 숨겨졌던 태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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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펜클럽 일행은 천 년 고찰 진관사를 찾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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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 다다르자 주지 스님이 마중을 나와서 반갑게 인사를 하며 진관사의 내력을 대충 설명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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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에 들어서자 법해(法海) 스님이 마이크를 받아 안내하기 시작한다.





진관사는 고려 8대 현종 원년(1010년)에 진관대사를 위해 창건하였단다. 고려 7대 목종 때 극심한 정쟁 가운데 목종이 아들이 없어 대량원군 순(詢)이 왕위계승자로 봉해지자 죽임을 꾀하는 무리가 많아, 진관 대사가 수도하는 삼각산의 암자로 축출되었다고 한다.


대량원군의 신변에 위험을 느낀 진관대사가 본존불을 안치한 수미단 밑에 땅굴을 파고 그 안에 12세인 대량원군을 피신시켜 자객으로부터 화를 면하게 하였다. 3년을 굴에서 보낸 후, 강조가 군사를 일으켜 목종을 폐위하고 대량원군 순이 제8대 현종으로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다.

순이 재생의 은덕에 감사하여 암자 인근에 큰 절을 세우고 진관사라 명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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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세종 때는 집현전 학자들이 업무를 수행하지 않는 시기에 진관사에서 독서와 학문에 전념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성삼문, 신숙주, 박팽년 등이 세종의 명을 받아 학문 연구에 전념하여 1443년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에 기여했다.


진관사는 3·1 운동 당시 불교 독립운동의 본거지였다. 당시 백 초월 스님이 시무하던 진관사에서 3·1 운동 당시 직접 사용하던 태극기와 지하신문들이 발견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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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성각 보수 작업으로 내부 해체과정에서 불단(佛壇)과 기둥 사이에서 한지로 된 큰 봉지가 벽면에 부착되어 있어서 이를 떼어내자 태극기를 보자기처럼 사용하여 싸여 있는 독립신문 등 20여 점의 독립운동 관련 유물들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독립운동가 백초월 스님이 일제에 체포되기 직전 긴박한 상태에서 비밀리에 진관사 내의 한적한 건물 칠성각의 벽 속에 숨겨놓은 것으로 추정된다. 빛이 차단된 밀폐공간에서 90년간 보존된 유물을 실제 눈앞에서 보고 있으려니 만감이 교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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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역사성, 민족성, 사찰의 애국심, 스님의 구국정신이 남아있는 문화재로서 그 가치가 인정되고 후손에게 귀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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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강당에서 차와 떡을 대접받고 쉬면서 스님의 귀한 강의를 경청하며 차츰 애국자가 되어간다. 외국에서 벗이 오면 꼭 진관사에 와서 템플스테이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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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면서 <종교를 넘어 ...>가 새겨진 글자가 한층 나를 매료시켰다. 진관사에서는 종교를 넘어서 여러 교단이 함께 수련회를 하고 세미나도 열게 된다고 한다. 종단에서부터 화합의 종소리가 울리기를 기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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