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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진 Oct 21. 2021

우리는 왜 악플을 달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가



  ***요즘 인터넷 포털에 들어가면 대선 후보 뉴스로 난분분하다. 그에 따른 악플 수준이 완전 욕으로 끝난다. 이건 어느 댓글 부대의 짜고 치는 고스톱같다. 종아리만 봐도 엉덩이 봤다고 우길 기세다. 수 년전 군함도 영화에 달린 악플을 보고 쓴 글이 있어 소개한다.




우리는 왜 악플을 달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가

           (영화 ‘군함도’를 보고)  



  “스크린 독과점이다. 역사 왜곡이다. 암살, 국제 시장, 부산행을 짜깁기했다. 한국의 부정적 반응을 보이는 아이러니다.”라는 댓글이 난무한다.     

  영화 평론가도 아니고 광적인 팬도 아니다. 다만, 같은 시기에 개봉한 다른 영화 애호가들이 ‘군함도’ 영화에 대해서 왜깍대깍 떠들어댄다. 스토리 자체는 실화가 아니고, 그때의 참혹했던 배경을 재구성했을 뿐이다. 작가를 역사학자로 착각해서는 안 되며, 내용 면에서 허구를 이해해야 한다.


  우선 스크린 독과점에 대해서 말하자면, 영화를 CJ에서 만들었으니 단연코 CGV에서 상영하는 게 당연하다. CGV 상영관이 많다 보니 열악한 상대편에서 불만을 표출하겠지만, 같은 회사 작품을 우선 상영하는 건 지극히 정상이다. 멀티 시네마에 더해서 멀티플렉스인 곳이 얼마나 많은데, 자유 경제 시장에서 이런 걸 독과점이라고 하는 건 맞지 않다.

  역사 왜곡이라면, 일본 정부가 군함도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올리면서 한국 노동자에게 강제 노역을 시킨 문제는 쏙 뺀 것이 역사 왜곡이다. 군함도 영화가 역사 왜곡이란 건 말이 안 된다.

 아직 젊다면 젊은 44살 류승완 감독이 뭣 때문에 친일영화를 찍겠는가. 감독을 친일이라 평하는 건, 소설을 쓴 작가를 주인공으로 생각해서 주인공의 문란한 성생활을 유추하는 웃지 못 할 일과 같은 맥락이다. 그가 어둡고 아픈 역사를 공론의 장으로 끄집어내 준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하지 않을까.

  짜깁기했다는 생각도 틀렸다. 워낙 국제시장에서 광부의 강한 캐릭터와 좋은 연기로 인정받은 황정민 배우를 군함도 제작사가 캐스팅 한 것이지, 광부로 분한 모양새가 비금비금하다고 짜깁기라는 건 옳지 않다. 부산행도 공유가 어린 딸 김수안을 안고 부산으로 가는 장면에서 어린 김수안이 대찬 연기를 인정받았고, 그 캐릭터에 맞는 연기를 잘 해냈기 때문에 뽑힌 거다. 한두 가지 겹치면 “짜깁기다 표절이다.” 하고 삿대질을 해대는 이 살벌한 세상이 두려운 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상대방에게 관대하지 못할까. 사사건건 딴죽 걸고 말 한마디마다 물고 늘어지고 상대방 가슴에 대못을 쾅쾅 박아대야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은 왜일까.      

  사진작가 이재갑 씨는 부산 ‘국립 일제 강제 동원 역사관’ 6층 기획실에서 ‘군함도 - 미쓰비시 쿤칸지마’ 전시회를 열고 있다. 그는 “역사는 개인의 것이 아니므로 당연히 나눠야 한다.”는 생각으로 군함도에 장기간 거주하며 여러 가지 정황을 사진으로 담았다.     

  일본뿐 아니라 대한민국 곳곳에도 군함도 같은 역사적 상처가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류승완 감독이 뭣 때문에 친일영화를 찍겠는가. 그가 어둡고 아픈 역사를 공론의 장으로 끄집어내 준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하지 않을까.



  일본이 군함도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올리며 군함도가 인기 관광지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관련 책자 어디에도 강제 노역이란 단어 찾지 못한다. 관광 안내원 역시 탄광 도시로 호황을 누렸던 화려한 과거만 강조할 뿐 강제 노역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런 걸 관계 기관에 항의하고, 전 세계에 퍼트려야 함이다. 지금 독과점이니 뭐니 하며 집안싸움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본다.     

  미국 시장에서 ‘군함도’가 같은 기간 개봉한 ‘덩케르트’ ‘다크 타워’를 눌렀다고 한다. 미 언론도 호평 일색이다. 현재 LA, 뉴욕, 워싱턴, 시카고, 애틀랜타, 밴쿠버, 토론토, 등 미국, 캐나다 42개 지역에서 상영 중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블록버스터급 영화 ‘군함도’ 관람을 하면서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젊은이들이 이 영화는 꼭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국가가 얼마나 소중한지 나라 잃은 설움이 어떠한지 간접 경험을 해 보았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한 사람이라도 살면 우리가 이기는 거야.” 영화 속에 이정현의 말이 귀에 쟁쟁하다. 생명 하나하나가 그만큼 소중하다는 일깨움이다.

  우리 속담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말이 있다. 인간 세상에서 이것은 인지상정일지 모른다. 시기 질투가 있는 곳에 발전이 있는 것이니까. 그러나 이렇게 상대를 악평하고 나면 과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지 모를 일이다.


  군함도 영화에 대한 악성 댓글 다는 분들에게 감히 주장한다. 영화는 그냥 영화로 보면 되고 굳이 작가와 감독이 애국자가 되기를 강권하지 말았으면 한다. 선거판에서나 마타도어가 횡행하여 친일파 운운하는 것이지 예술 작품을 놓고 정치적 논조로 폄하하지 말았으면 한다. ‘군함도’ 영화로 하여금 애국애족이 더 충만해진 관람객이 늘어난다면 이 영화야말로 바로 애국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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