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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진 Jan 10. 2022

아포가토에 빠지다



아포가토(Affogato)에 빠지다     


  달콤하고 쌉싸래하다. 아이보리 색과 암갈색(暗褐色)의 대비가 멋지다. 내가 즐겨 입는 옷의 배색(color combination)이어서 익숙하다. 아이스크림에 에스프레소를 끼얹기도 하고, 에스프레소에 아이스크림을 퐁당 빠트리기도 한다. 카페인이 걱정되니 작은 양으로 아주 강렬한 맛과 향을 느낄 수 있는 에스프레소가 좋다. 아이스크림 향은 바닐라를 선호한다.



  젊은 날에는 비엔나커피를 즐겼다. 인스탄트 커피 가루에 휘핑크림을 잔뜩 올려서 거품에 코를 박았다. 집에서는 휘핑크림이 없으면 아이스크림을 올려서 스푼으로 떠먹으며 음미했었지만, 다이어트 대열에 합류하면서 열량이 높은 아이스크림이 부담스러워 비엔나와는 작별을 하고 말았다.

  거품 있는 커피를 좋아하면서도 거품 키스를 한 번도 못 해 본 숙맥이다. 옆 사람은 출근하자마자 한 잔, 점심 후에 한 잔, 회식 후에 한 잔, 매일 커피 홍수에 살아서 집에 오면 일절 커피를 마시지 않았으니 기회가 없었다. 

  결혼 전에는 출근하자마자 직원들과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계란 노른자를 동동 띄워서 주는 모닝커피를 마셨고, 저녁에는 계란 노른자를 띄운 쌍화차를 마시던 것이 고작이다. 그래 저래 거품 키스를 해 볼 기회가 없었으니, 연애도 아주 심심하게 했던 청춘이었다.      

비엔나를 끊고 언제부턴가 카푸치노(Cappuccino)에 빠지기 시작했다. 커피에 우유 거품을 내서 얹는 건 같지만, 비엔나처럼 휘핑크림이나 아이스크림이 많이 들어가지 않으니 안심하고 마시게 되었다.

그러나 차츰 나이가 들면서 카푸치노 한 잔도 불면이 온다. 할 수 없이 디 카페인을 주문했는데 마찬가지로 그날도 잠을 설쳤다. 고심 끝에 핫초코(Hot Chocolate)를 몇 번 주문해 보았으나 너무 달달하여 금방 싫증이 났다. 커피는 찐하게 즐기고 싶지만, 불면이 걱정되어 생각해 낸 디저트가 아포가토다. 에스프레소를 소량 넣으니, 진한 향과 달콤한 걸 좋아하는 나에게는 일거양득이다.


에스프레소는 다양한 커피음료와 요리의 베이스가 된다. 아메리카노는 

에스프레소에다 물을 희석한 것이고, 카페라테는 우유를 더한 것이다.

나는 둘 다 싱거워서 좋아하지 않는다.



시중에는 아직 아포가토가 없는 커피집이 있어서 실망할 때가 많다. 나는 에스프레소를 한꺼번에 많은 양을 부어서 주는 것보다, 별도로 담아서 주면 조금씩 부어가며 커피와 아이스크림의 조화를 느껴보는 걸 좋아한다. 번번이 특별히 부탁하기 미안한 구석이 있어서 그냥 두루뭉술하게 넘어갈 때도 있다.

집에서는 아몬드나 호두를 다져서 토핑 삼아 올린다. 견과류를 잘 안 먹게 되니 디저트 한 방에 영양의 균형을 이루려는 몸짓이다.     

아직 아포가토가 보편화하지 않아서 친정 모임에서는 내가 주문한 걸 손 윗분들께 양보할 경우가 있고, 내가 주문하면 그게 뭐냐고 꼬치꼬치 물어서 전부 아포가토를 주문하기도 한다.

모임 있는 날은 식사하는 즐거움보다 아포가토 생각에 더 기대가 크다. 

커피는 항산화 성분이 풍부해서 노화 방지에 좋고, 체지방 분해와 집중력을 향상해준다니 소량의 에스프레소는 솔깃하다.

아들네 집에 가면 며늘아기가 꼭 카푸치노를 만들어 주는데 이제 곧 내 취향이 드러나겠지. 카푸치노는 우유 거품만 내면 되는데, 아포가토는 아이스크림이 있어야 하니 꼭 사들고 가야겠다.   


   



카페로열(cafe Royale)은 나폴레옹이 즐겨 마신 커피로 왕족의 커피로 불린다고 한다. 감히 그런 걸 바라지는 않지만, 내 가족과 친구만은 한낱 장삼이사 필부필부 갑남을녀인 나를 아포가토를 즐기던 여인으로 기억해 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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