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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진 Jan 11. 2022

뒤늦은 후회



뒤늦은 후회     



  신혼 10개월 차 부부가 내과에서 검진하는 모습을 시청했다. 부친이 위암을 앓았던 터에 본인이 속이 더부룩하고 팽만하여 걱정이라며 긴장한 모습이다. 엑스레이 사진을 보니 무슨 장방형 주머니에 동글동글한 구슬 같은 것이 알알이 박혀있다. 그것이 공기라며 가스가 차서 그러니 방귀를 좀 뀌면서 살라는 처방을 내린다. 새신랑이 사랑하는 아내 앞에서 방귀 뀌기가 창피해서 참다 보니 그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나의 신혼을 떠올리니 슬며시 웃음이 난다.



  우리 부부는 친한 친구 결혼식에 갔다가 만난 사이다. 육 개월을 하루도 빠짐없이 만나다가 결혼하게 되었다. 신혼 삼 개월쯤 되었을 즈음, 저녁 식사 후 소파에서 팔짱을 끼고 TV 시청하다가 남편이 느닷없이 한쪽 엉덩이를 반쯤 들더니 문이 흔들릴 정도의 데시벨로 뽜앙하고 실수를 한다.

  미안하다는 말도 없고 당연하다는 듯이 의기양양 하는 꼴이 자존심이 상해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나를 무시했다고 옥상으로 뛰어 올라가 가장 슬픈 새색시가 되어 울었다. 결혼 후 처음 싸운 게 그 방귀 사건이다. 남편은 처음에는 그게 울 일이냐며 빙글거리더니, 앙앙거리는 모습을 보더니, 심각하다고 생각했던지 미안하다고 뒤늦게 사과했다. 내 주장인즉슨, 데이트할 때는 방귀 한번 안 뀌더니 결혼했다고 함부로 대한다는 거다. 그 후로 우리는 서로 어떻게 해결했던지 서로 방귀를 트지 않고 살았다.   

늙어가며 가끔 그때사건으로 놀림도 받고 이불킥을 하기도 했다.


   



  “당신의 모든 것을 사랑한다며 방귀 좀 뀌라.”는 새색시의 말을 듣고 보니, 그 사랑은 무엇이며, 내 사랑은 무엇이었든가. 중뿔나게 자존심이 상하네 뭐네 하며 상대를 괴롭힌 것이 후회된다. 방귀 안 뀐 내가 미안하다고 해야 할 판이다. 나중에 건강이 안 좋아져서 변비가 생긴 것이 혹시 그 방귀를 안 터서 그런 건 아니었는지 뒤늦게 반성해 본다.



  살면서 후회하는 일이 많지만, 새 새댁의 사랑 법을 배우고 뒤늦은 후회로 뒤척이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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