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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진 Jun 29. 2022

민속놀이 윷놀이 말판

  고향 일가 모임이 있어서 석촌역 근처 ㄱ ㅇ 불고기 집에 모이게 되었다. 안동 향우회장님, 재경 전의, 예안 화수회장님과 사무총장님, 오늘의 스폰서 마당발 아재, 안동 지방 효자 효부로 소문 난 부부, 여성회원으로는 필자의 3년  선배가 항렬로 따지면 증조항(따블 할매)이지만, 아름다운 시니어께 할매라기엔 미안해서 나는 ㅇㅇ언니로 부르는 선배, 유난히 상큼한 문학 후배, ㅇㅇ구 부녀회장님, 그리고 멀리 인천에서 일가 찾아 온 다정한 이웃 아우님 모두 설렘과 반가움에 주먹 인사가  두 번 세 번 이어진다.


  등심 갈비와 냉면에 누룽지탕까지 해 치운 포만감이 가시기도 전이다. 그 동네 사는 솜씨좋기로 유명한 무섬 아지매가 이렇게 헤어지기 서운하단다. 저녁에 안동 국시 해준다고 자기 집으로 가잔다. 그중 시간이 허락하는 몇이서 가게 되었다. 자두, 살구, 수박, 감자전까지 먹으며 수다판이 벌어지는데, 선배 언니가 "옛날 엄마 솜씨야."라며 곱게 수놓인 윷말판을 내놓는다. 얼마나 예쁘게 만들었는지 백화점에서 팔아도 될 정도다. 설날 손녀가 오면 윷 놀자고 종이 말판을 갖고 와서 논 기억이 있는터라  나도 한 세트 얻었다. 말판을 그려놓고  빨간천을 오려서 일일이 수를 놓았다.



혀를 내두르며 말판을 펼치는데, 말 주머니(바둑알 또는 조약돌 등)를 청홍으로 어여쁘게 만든 복주머니가 나온다. 복주머니를 열자 꼬깃꼬깃 구겨 넣은 세종대왕 한 분이 튀어 나오시니  어절시구! 옛날부터  아포리즘 비슷하게  주머니를 선물할때는 빈 주머니를 안준다는 말이 전해져서 그렇게 하셨을거란 생각이다.  선배 어머니는 택호가 무실댁으로서 천수를 누리시고 별이 되신지 어언 10년이 지났다. 그때 만원은 꽤 큰 돈이었는데, 이런 통 큰 할매라니. 그걸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가 갖고 온 선배도 대단하지만, 그 때 그시절에 후손에게 남기겠다고 이런 생각을 하신 그 마음참으로 대틀이시다. 퇴계 이황도 나오고 율곡 이이도 나온다는데, 오늘 두 개 다 세종대왕님이 나온거다. 부녀회장과 필자가 받았는데, 둘 다 복주머니를 열다가 세종대왕을 만나고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하니 참으로 재미지고도 시사하는바가크다.



윷말판 사이에 끼워 둔 메모장이 더 새롭다. 그 옛날에 메모하는 습관과 뭣에 쓰는 물건인지 설명을 덧붙인 것을 보며, 참으로 넉넉하신 품격과 앞을 내다보는 선견지명이 남다르셨다는 생각에 존경스럽다.  <영원히 남기는 것>이란  <영원히>라는 어휘에 코끝이 찡하다. 뭣이 중헌디! 인생의 황혼기에 과연 삶이 무엇일까를 생각하신 철학적 미학적으로 표현하지 못할 많은 생각이 내포된 문장이다. 영원히 남기는 것은 영원히 간직해야 할 일이다.



세 가지를 펴놓고 감동의 늪에 풍덩 빠진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소용돌이의 틈바구니에서도 역경을 이겨내신 분, 누구의 손부로 자부로 아내로 어머니로서 본분을 다하셨다. 자녀 칠 남매를 훌륭하게 키워내셔서 모두 자기 자리에서 방귀께나 뀌고 살게 하셨다. 그럼에도 노후 시간이 나실 때 이런 생각을 하시고, 이 세밀한 작업을 마다하지 않으셨으니 그 사고의 깊이가 깊고도 넓으시다.



이런 분이 현대 교육을 받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도 든다.  현대판 신사임당을 그리며, 나도 분발해 보자는 새로운 다짐도 하게 된다. 이런 마음은 누구나 본 받아야 할 일이다. 잘 간수해서 대대손손 가보로 남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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