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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명월에서 노닐다

재경 전의·예안이 씨 안동 화수회

by 소봉 이숙진




구름도 유교적 운율로 노니는 오월 스무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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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경 전의·예안이 씨 안동 화수회에서 청풍명월로 야유회 가는 날이기도 하다. 냐짱에서 귀국한 지 며칠 되지 않아 아직도 목이 좀 잠겨 있는 상태지만, 새벽에 일어나 멀미약을 삼킨다. 집결지인 종합운동장 6번 출구에는 여행객들이 삼삼오오 반가움으로 아침을 연다. 빨간 버스 두 대가 <전의·예안 안동 화수회>란 명찰을 달고 나타나서 단숨에 우리 일가들을 흡수한다. 서울에 살며 몇십 년을 못 만났던 일가들이 서로 반기며 한 옥타브 높이는 안동 사투리가 친근하다. “껴?”와 “니더”로 끝나는 구수함이 추억을 새롭힌다.


청풍명월 가는 길에 운전기사님의 구수한 충청도 억양의 해설이 재미있다. 다소 말이 좀 짧고 비속어를 남발하지만, 사람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노력이라 양해하기로 한다.

청풍호 입구에 들어서자 갑자기 하루에 몇 번 보여주지 않는다는 분수쑈가 하늘로 솟구친다. 차 안에서 반가움의 환호성이 터진다. 청풍호의 명물이다. 지자체의 관광 상품에 대한 노력이기도 하다. 사무국장이 전화로 시각을 알린 모양이다. 우리 일가의 드높은 기상이 엿보여 자랑스럽다. 분수 쑈는 한동안 이어진다.

가청풍명월 분수.jpg (일가 이헌철 님이 찍은 사진)


분수 뒤로 보이는 산이 비봉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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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가 이수자 님이 찍은 사진)


분수 쑈가 끝나고 조금 지나서 금강산을 보여주겠다며 우측을 보라고 한다. 과연 금강산 일만이천봉처럼 생긴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아주 훌륭한 관광상품이 되겠다. 내려서 찬찬히 보고 싶으나 일정의 시간 관계로 멈출 수는 없다니 아쉬움을 뒤로한 채 차 안에서 몇 컷 찍었다.


가청풍명월금강산ㄴ.jpg

우리는 제천 청풍명월에 도착해서 첫 번째 스케줄로 케이블카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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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명씩 조를 짜서 서로 사진 찍어 주기도 하고 고향 우렁골 동가(洞歌)를 합창하기도 한다. 가끔 음이탈도 들리지만, 다 기분이 좋아서 나는 소리겠거니 한다.

학가산아, 낙동 수야 내가 놀던 사일당아

나는 간다. 유수같이 흘러서 간다.

봄이 와서 꽃이 피고 나비가 날 때에

강남 제비 돌아온단 고향 소식 전해주소.


산천초목 잘 있거라 형님 누님 잘 계세요

대장부는 희망을 찾아 타향으로 갑니다.

학사산이 무너져도 나의 걱정 마소시고

멀리 타향 전장에다 고향소식 전해주소


어릴 때 많이도 불렀던 노래다. 방학만 되면 모여서 부르던 노래다.


정상에서 멀리 비봉을 바라보는 눈 맛이 시원하고 내려다보는 경관은 멋짐을 넘어서 한 폭의 동양화다. 올라오면서 본 작약꽃 무리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역시 꽃도 무리 지어 피니 더 아름답다. 서울에서 뿔뿔이 흩어져 살다가 이렇게 시원을 찾아 집결하는 우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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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포토존을 찾아 흔적을 남기고 우의도 다지며 즐거워한다. 고향에서는 집성촌이라 두세 살 터울로 또래가 형성되었기에 자동으로 또래끼리 다니게 된다. 칠십 성상을 살아 낸 필자도 어릴 적 또래 친구들과 유쾌한 시간을 보낸다. 전망대에는 수많은 캡슐이 진열되어 있는데, 편지를 써서 캡슐에 보관해 주는 장치다. 남산의 커플 자물쇠보다 업그레이드된 고객 서비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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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호 수몰지구에 살던 집을 옮긴 곳을 살펴봤다. 마당에는 어린이 놀이였던 비석 치기가 소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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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돌아 나오다 측면에 보관된 탈곡기를 발견했다. 재래식 탈곡기를 보니 뭉클하다. 필자도 이 탈곡기를 밟으며 볏단을 대 본 경험이 있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이어 정보사회로 발전된 나라에 대한 사유로 뿌듯한 자부심에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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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기에 썼던 물건을 고스란히 보관하고 있어서 관심 있게 살펴봤다. 대충 알 수 있는 이름은 가마, 약장, 반닫이, 소쿠리, 망태, 물지게, 메주틀, 다래끼, 작두, 여물통, 물레, 조리, 수저통, 따베이 등등이다. 어디에 쓰는 건지도 모르는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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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청풍명월 메주틀 다래끼 물지게.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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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청풍명월 조리 소쿠리.jpg


혼자서 이 옛 물건 사진 찍다 보니 일행이 보이지 않아 서둘러 나왔다. 옛 정원과 후원을 돌아보고 화살촉 나무를 자세히 관찰해 볼 수 있었고, 흰 꽃잎이 네 개이며 열매가 딸기 모양인 산딸나무의 이야기를 나무박사인 친한 아재로부터 자세히 들었다. 나흘나흘 나비가 내려앉은 듯한 모양새다. 꽃색이 핑크빛도 있다고 한다. 미국 산딸나무는 십자가를 만드는 목재로 쓴다고 하니 나뭇결이 아주 단단한 것 같다. 열매와 꽃과 잎은 약재로도 쓴다고 한다. 소화불량을 완화하는 데에 탁월한 효능을 가지고 있고, 복통을 가라앉히거나 설사를 멎게 하는데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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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중식으로 한우 버섯 불고기를 푸짐하게 대접받는다. 디저트는 안동에 계신 솜씨 좋은 일가 언니가 해 보낸 빨간 식혜다. 유년을 떠올리며 감격에 젖는다. 그 옛날 엄마 맛이다. 기어이 한 보시기 더 얻어먹는 짜릿함까지 누리고 일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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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백팩이 내 마음같이 빵빵하다. 운호 사무국장이 선물한 립스틱과 회장님이 선물한 타월과 청풍호가 준 바람까지 집어넣었으니 놓치면 날아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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