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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진 Jul 15. 2023

집집마다 곰 한 마리씩 키우고 있다

  

   

  여우와는 살아도 곰하고는 못 산다는 말이 있다. 곰 같은 남자 여우 같은 여자를 비유할 때도 곰을 자주 차용한다. 포유류 곰과에 속하는 짐승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몸은 크고 굳세며 행동이 굼뜨고 미련함을 대변하는 말이기도 하다.      

  왁자지껄 시시콜콜 동창 모임에 나왔다가 식사만 하고 일어서는 부류가 있다. 경비 설 시간이라서 간다는 거다. 아니, 은행 지점장까지 하던 친구와 모 기업 임원까지 하던 친구가 무슨 경비를 서냐고 모두 뒤통수 둘을 향해 미어캣이 된다. 한때는 호기롭게 술도 잘 사고 찬조금도 척척 내던 놈들이 어쩌다 저 지경이 되었는지 의아해한다.

“집집마다 집에 곰 한 마리씩 키우고 있어. 요즘 골방에서 잠자고 있는 이 곰이 골칫거리지.” 누군가의 시니컬한 한탄이다.     

  월급 반을 뚝 잘라 사교육비로 바쳤건만, 대학을 졸업해도 일자리가 없다. 몇 년간 고시원에서 취업 준비 학원 다녔으나 마땅한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 월세도 만만치 않아 본가 골방에서 은둔생활을 하고 있단다. 칠순 아비는 경비 서고 불혹 넘은 아들은 밤낮으로 잠만 잔다. 낮에는 가족 보기 면구스러워 잠만 자고, 밤에만 살짝 나와서 하루 한 끼 민생고 해결하고 골방으로 기어들어가 칩거한다고 한다.  운동 부족으로 살만 찌니 갈수록 곰을 닮아 간다.   

  낮에는 친구들이 모두 직장에 나가니 만날 사람도 없고, 밤에라도 나가려면 용돈이 있어야 하니 나갈 수가 없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부모에게 손 벌릴 수도 없는 형편이다. 그 괴로운 자녀를 보는 부모 마음은 얼마나 찢어질까.      

  정년퇴직한 부모가 밤잠을 반납하고 경비를 선다. 한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다. 경제 대국 10위 권 안에 있는 대한민국에서 이런 슬픈 곰들을 상상이나 했을까. 이 슬픔은 쏟아지는 장마 빗소리에 떠밀려 흘러가 버리면 좋으련만.      

  4차 산업시대에 걸맞은 챗GPT나 AI보다 이런 곰들을 밖으로 유인하는 쑥을 개발하는 게 우선이다. 이 장마가 지나가면 무지개도 활짝 서겠지.


  이 아까운 곰들이 활보하는 그날까지 이 사회는 곰을 인간으로 만드는 쑥을 개발해야 할 일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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