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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진 Mar 23. 2024

선암사 고매를 알현하다


선암사 선암매를 알현하러 오르는 길 왼편으로는 계류가 흐른다. 진입로에 무지개다리인 승선교의 운치가 절경이다. 현존하는 조선시대의 다리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아치교로 유명하다. 뒤편으로 드러난 이층 누각은 강선루다. 글자 뜻 그대로 신선 한 분이 하강한 듯 고고하다.


왼쪽 계류의 쪼르륵 졸졸 물소리가 정겨워 어깨춤을 추며 설렁설렁 올라가니 작은 연못이 보인다. 연못 속에는 작은 인공섬이 있다.

삼인당이라는 이 연못은 도선국사가 축조한 것이다. 연못의 장타원형의 안에 있는 섬은 자리이타(自利利他), 밖의 장타원형은 자각각타(自覺覺他)를 의미하는 것으로 불교의 대의를 표현한 것이다. 삼인(三印)이란 제행무상인(諸行無常印), 제행무아인(諸法無我印), 열반적정인(涅槃寂靜印)을 뜻하는 것으로 불교의 이상을 배경으로 한 것이다.

일주문에 들어서니 왕방울 같은 눈을 부릅뜬 사천왕상이 없다. 풍수학상 워낙 길지라 사천왕이 지키지 않아도 탈이 없다는 거다. 속세와 불계의 경계 역할을 하는 사찰로 선암사 입구에 세워져 있다.


선운사는 비교적 좁은 계곡에 절이 들어 있어서 절제미가 돋보인다.  선암사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서 증개축을 자유로이 할 수 없으므로 일월이 덧쌓일수록 낡고 빛바래어 더 고풍스럽다.




드디어 선암매를 살핀다. 산속에 옹기종기 가람배치가 포근하다. 가히 600년의 세월을 견딘 나무답게 꽃은 피었으나 몸통은 이끼가 뒤덮었고 전지 수준이 아닌 가지가 잘려나간 모습이 애달프다. 사람이 팔이 잘린 모습이랄까. 멜라닌색소의 공격인지 온통 숯검댕이 색의 몸체에 퍼석퍼석한 골다공증 같은 나무에서도 꽃은 피어 있다.  나무도 피돌기가 안되어 이끼가 끼는 건지 안타깝다.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우리의 훗날 모습이 어른거려 코끝이 찡하고 슬프다. 600년을 살아 낸 선암매처럼 고고하게 늙을 수 있을까.

경내 돌절구에 물이 가득 흐른다.  동백이가 스스로 내려앉은 건가. 직박구리가 물어다 놓은 걸까. 동백 세 잎이 나란하다.



정호승 시인의 시구가 생각나서 뒷간을 일부러 찾아 들어가 보았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 해우소로 가자/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뒷간은 지방 유형 문화재 214호다. 바닥까지 공간이 족히 2m는 넘을 것으로 보여 다리가 후들후들 떨릴 것 같다. 임진왜란 이전에 지어진 아주 오래된 변소라고 한다.


내일 아침에 다시 와서 매향을 흡입하리라 다짐하고 경내를 빠져나와 편백숲을 찾아 오른다. 오르는 길에 홍매가 우리를 반긴다.


편백숲 속에 들어가 폐활량을 확장시킨다. 이 양질의 산소를 담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편백숲에 들어가니 점심 식당에서 만났던 60대 중늙은이가 텐트를 치고 있다. 삼월 중순이라 해도 꽃샘바람 심술이 여간하지 않은데, 숲 속에서 숙박하기엔 무리일 것 같다. 마음이 아픈지 몸이 아픈지 사정은 다 모르겠지만, 편백나무의 기를 받는 것과 감기라도 걸리는 불상사와 어떤 것이 유리할지 아무리 인수분해를 해 봐도 명확한 답이 나오지 않는다. 텐트 치는 남자만 남겨놓고 예약한  '해품달' 한옥집을 찾아 내려온다.

해품달 입구 다리밑에 늘어진 수양 홍매를 발견하고 일행 일제히 옥타브를 올리며 줌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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