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서원 창건 45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 참가키로 했다. 퇴계학연구원 회원들이다. 아침 8시 20분까지 한 시간 걸리는 장소에 집결해야 하는 실정이다. 어느 행사든지 약속 시각 30분 전에 도착해야 직성이 풀리니, 전날 밤에는 또 잠이 오지 않는다. 요리조리 엎었다 제쳤다 해봐도 눈만 말똥말똥 거실을 한 바퀴 돌아 서재를 두 바퀴 돌아봐도 대책이 서지 않는다. 우유를 데워서 마셔도 양 백 마리를 거꾸로 세어도 정신은 더욱 초롱초롱해진다. 이때까지 알람을 켜놓았지만, 늘 알람이 울리기 전에 깨어 있으니 그 기능을 이용하지 못했다.
한잠도 못 잔 상태로 안동 한국국학진흥원에 도착해서 행사장에 입장했다.
개회식과 축사와 내빈소개가 이어지고 도산서원 창건 450주년의 역사적 의미에 대한 기조연설이 끝나고 휴식시간이 되어 식장을 빠져나왔다. 이 혼탁한 세상에 조선 성리학과 유교 사상을 널리 퍼트리고 추구하는 일은 중요한 덕목이다.
국학진흥원 현관 입구에 퇴계 선생 서각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도산잡영』 칠언절구 18 수다. 퇴계 선생이 1561년에 도산서당을 창건하고 건물과 주변의 경관에 대해 일일이 이름을 부여하여 그 의미를 담은 것 중 칠언절구 18수를 서각으로 새겨 선보인다. 한 수 한 수 음미해 본다.
<옥당억매> 이 시는 퇴계선생이 42세에 홍문관 부교리로 있을 때 봄에 옥당에서 숙직하고 있으면서 매화를 보고 지은 시다. 선생의 고결하고 단아한 마음이 깃들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뜰에 매화 한 그루 , 가지에 눈이 만발하네
세상 풍진에 품었던 꿈이 어긋났구나
옥당에 앉아서 봄밤의 달을 대하니
기러기 우는 소리에 생각되는 바 있도다
<도산서당> 서원 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퇴계가 직접 설계하셨으며, -자 형태로 3칸 건물에 마루 1칸을 내달았고, 건물 3면에 퇴를 놓았던 점이 특이하다.
<완락재> 사색과 연구를 계속하며 제자를 교육하던 단칸방을 완락재라 하였으니, 완상 하여 즐기니 족히 여기서 평생토록 지내도 싫지 않겠다고 했다. 덧지붕을 달고 마루를 연장하여 암서헌이라고 했다.
<암서헌> 제자를 가르치며 휴식을 취하던 마루. 학문에 대한 자신을 오래도록 가지지 못해서 바위에 깃들어 조그마한 효험을 바란다는 겸손의 뜻이다.
<농운정사> 제자들의 기숙사다. 서당의 서쪽에 있다. 각 공간마다 다른 구조로 설계된 이유가 무척 흥미롭다. 학생들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고려한 배려라고 한다. 퇴계 선생의 교육 철학이 건축 하나하나에 깃들어 있음이 느껴지는 곳이다. '언덕 위에 구름'이라고 낭만적인 이미지가 떠오른다. 산중에 들어가서 열심히 공부만 하던 사람의 고사에서 따 온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