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동북의 작은 교토 무사 마을
가쿠노다테의 사무라이 저택
벚꽃이라면 진해 벚꽃이 으뜸이다. 화려하기로는 여의도 윤중로 벚꽃이 제일이다. 그 벚꽃 길을 걸으며 얼마나 행복에 겨웠고 감탄을 했던가.
오늘은 일본 북부의 3대 벚꽃 명소로 꼽히는 가쿠노다테의 무사마을에 왔다. 350년 전통의 에도시대 사무라이 저택이 늘어서 있는 ‘동북의 작은 교토’라고 불리는 마을이다.
작은 교토라지만 교토의 화려함이나 세련됨과는 거리가 멀다. 그냥 한적한 시골 마을로 묵직함과 정중함이 묻어날 뿐이다. 하지만, 저택 내의 고목의 운치와 검은 담장에 반쯤 쌓인 흰 눈이 이루어내는 앙상블은 아름답다.
국가 천연기념물로 등재되었다는 아름드리 벚나무들은 꽃 대신 눈꽃이 활짝 피어 장관이다. 마치 다가오는 봄 패션이 흑백의 대비를 구현할 듯이 조화롭다.
길잡이가 몇몇 사무라이 저택을 손꼽는데, ‘도요토미 이에야스’라고 해서 흠칫 소름이 돋는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임진왜란을 일으킨 장본인이 아닌가. 그 도요토미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후예라는 짐작에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는 전국시대 마감 후 일본의 패권자가 되어 에도 막부 시대를 열었으니 두 가문이 맺어지기는 쉬웠을 거란 추측에서다.
저택은 무료개방도 있고 유료도 있다는데, 무료는 거의 개방된 집이 없고 유료를 찾아 들어갔는데, 방에서 세 사람이 나오면서 셋 다 손가락을 세 개를 펼치며 삼백 엔이라는 표시를 한다. 일행은 모두 외면하고 지나가 버린다. 벗은 나를 생각해서 강력히 들어가자고 하지만, 집안도 음침하고 괴괴하여 마음이 열리지 않는다.
그러지 않아도 ‘도요토미’ 때문에 무르춤했었는데, 어서 오라는 인사도 없이 ‘삼백 엔’만 강조하는 것도 한 몫 보탠다. 내가 기행문이라도 쓸려면 들어가서 사진을 남기고 자세히 돌아보는 것이 옳겠지만, 둘 만 남은 상황에서 온갖 기우가 머리를 든다.
역사 문제를 거론하자면 여기 오지 말아야했거늘, 동반성장이라는 기치 아래 여행만큼은 공유해도 된다고 생각했던 거다. 그런인간적인 교감을기대한 길손에게우선 인사성 친절성이 베이스로 깔려야 하는데 기대에 못 미친다.
마을 곳곳에 자리한 소소한 기념품 가게와 카페를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손도 시리고 추워서 커피를 한잔 하고 싶지만, 또 오늘 밤잠을 설칠까 봐 카페인을 사양한다.
결국 마지막에 두툼하게 쌓인 눈을 아슬아슬하게 이고 있는 다른 유료 저택을 찾아들었는데, 신발을 벗지 말고 밖에서만 보고 가란다.
자기 나라의 문화와 전통을 홍보하는 태도가 날씨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성의가 없다.
다다미 중간에 구멍을 파서 숯불을 피우고 주전자를 매달아 놓은 것밖에 아무것도 없다. 문은 하나같이 창호지를 바른 미닫이다.
하긴 옛날을 재현하자니 난방이 잘 안 되어서 얼마나 추울 것인가.
밖에 나와 보니 우물과 두레박이 있어서 들여다보니 철근으로 막아놓고 겉모양만 보존하고 있다.
눈이 많이 와서 사람 구경을 못 하고 간혹 집 앞 눈을 치우는 노인만 보인다. 그 마을에선 나무껍질 공예 집이 몇몇 있고 무술 단련원이 크게 자리 잡고 있을 뿐 동네가 휑하고 조용하다.
“오다가 쌀을 찧어 도요토미가 반죽한 떡을 도쿠가와가 먹었다.”는 우스갯소리를 기억하며 만감이 교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