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의 호흡, 재즈의 리듬에 빠진 하루키의 팬

by 소봉 이숙진

마라톤의 호흡, 재즈의 리듬에 빠진 하루키의 팬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푹 빠졌다. 자신의 문학적 근원을 향해 고독한 싸움을 하는 하루키는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걸어가는 우리 시대의 건강한 작가다. 그를 구성하는 문화적 코드는 마라톤, 여행, 독서, 고양이, 그리고 재즈다. 그는 공간과 시간의 흐름에 구애받지 않는다. 나는 그의 팬으로서 그 무한한 흐름을 따라간다.

그가 새벽 공기를 가르며 달릴 때, 나는 그의 호흡을 상상하며 문장을 읽는다. 마라톤은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그의 문장이 지닌 리듬 그 자체다. 긴 호흡, 느린 축적, 그리고 끝에 도달하는 결승선, 나는 그 결승선을 함께 달리는 팬이다.

여행은 또 다른 차원의 문을 연다. 그는 낯선 골목을 걸으며, 그곳의 공기와 빛을 글 속에 담는다. 나는 독자로서 그 풍경을 따라가며, 그의 세계를 여행한다. 팬이 된다는 것은, 곧 그의 발걸음을 함께 걷는 일이다.

책을 읽는 그의 눈빛은 언제나 깊다는 걸 느낀다. 독서의 순간, 나는 그의 문장 속에서 또 다른 세계를 발견한다. 독서와 글쓰기는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고, 나는 그 거울 앞에 서 있는 팬이다.

고양이는 그의 문장 속에서 가장 부드러운 곡선을 그린다. 나는 그 고요한 존재감을 따라가며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을 목격한다.

팬으로서 나는 그 고양이의 발걸음을 따라가며, 그의 세계에 더 깊이 들어간다.

그리고 재즈. 재즈는 하루키 문장의 숨결이다. 나는 리듬을 따라가며 단어를 흔들고 문장을 늘였다가 줄인다. 즉흥적인 변주 속에서 나는 자유롭게 흔들린다. 팬이 된다는 것은, 그 변주에 몸을 맡기는 일이다.

나는 팬이다. 그러나 단순한 독자가 아니다. 나는 하루키의 문화적 코드와 세계를 연결하는 매개체다. 마라톤의 호흡, 여행의 빛, 독서의 깊이, 고양이의 고요, 재즈의 리듬, 그 모든 것이 그의 문장을 통해 내 안으로 흘러 들어온다. 그리고 동시에 그의 세계가 독자에게 건네지는 순간을 가장 가까이에서 목격하는 증인이다.

하루키는 소설 쓰는 작업을 ‘굴을 판다. 지하로 내려간다.’에 비유했다. 이것은 곧 그에게 글쓰기 행위는 그러한 신체적 실감을 생생하게 동반한다는 뜻이다. 꿈을 꾸기 위해 매일 아침 눈을 뜬다고 하는 하루키의 서사에선 사소하지만, 소중한 것에 대해 사랑을 배운다. 이는 하루키 문학 거의 모든 작품에 걸쳐 공통으로 나타나는 설화 구조라 할 수도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을 쓸 때 작가와 독자 둘만의 관계로 보지 않고 삼자의 관계로 놓고 본다. 그 하나가 바로 ‘장어’다. 그가 원체 장어요리를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쉽고 편한 상대를 택하고 싶은 의지였을 거다. 뭐 그리 엄청난 것도 아니고 장어와 대화하며 한 박자 쉬고 객관적 시각을 모색하겠다는데 그 누가 딴죽을 걸겠는가. 다시 말하자면 작고 낮은 자세로 임하면서 독자와 더 가까워지려는 마음가짐이라고 볼 수 있겠다. 대단한 모티브나 메타포를 기대했던 내가 깨달음을 얻는 순간이다. 냉철한 직관력의 하루키를 통해 일상에서 반짝이는 삶의 미학을 건져 올리고 싶다.

그의 에세이집은 거의 신문이나 잡지에 연재했던 글들이다.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은 1994년 봄부터 1995년 가을에 걸쳐 《SINRA》라는 예쁜 잡지에 다달이 연재했던 글이다. 『밸런타인데이의 무말랭이』는 《일간 아르바이트 뉴스》에 일 년 구 개월에 걸쳐 연재했던 칼럼을 묶어놓은 것이다.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 하나 못 받아서 무말랭이 조림을 만들어 먹었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은 언제나 젊고 지칠 줄 모르는 하루키 일상이다. 고양이와 마라톤 그리고 정처 없이 떠도는 여행, 그것은 글쓰기의 틈새에 삶의 여유와 즐거움을 만끽하는 하루키만의 여백의 삶이다.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는 잡지 《앙앙 Anan》의 연재 에세이 《무라카미 라디오》에 쓴 글이다. 일 년 동안 연재한 약 오십 편을 모아서 한 권의 책이 탄생한 것이다. 특별한 수사법(Rhetoric)이 없어도 살갑게 다가오는 그의 일상을 내비침이 매력적이다. 『하루키 씨를 조심하세요』 책은 우치타 타츠루 씨가 십 년 정도 쓴 하루키에 대한 글이다. 이 글을 옮긴 김경원 씨는 이렇게 썼다.

‘이 책은 하루키에 대한 새로운 발견으로 인간과 세계에 대한 통찰을 던져 준다. 내 생각이 얕았다! 내 경험이 짧았다! 내 앎이 턱없이 부족했다! 내 세계가 좁았다! 하는 깨달음을 덤으로 얹어 준다.’


나는 이처럼 그의 펜이 되어 세계를 기록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의 팬이 되어 그 세계를 사랑한다.


작가의 이전글그리움의 맛, 잡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