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전령, 매화가 전하는 메시지

by 소봉 이숙진

봄의 전령, 매화가 전하는 메시지

겨울은 끝나지 않을 것처럼 길다. 매서운 바람은 우리의 마음까지 얼어붙게 하지만, 그 속에서도 매화는 피어난다. 눈 속에서, 빗속에서, 달빛 속에서 매화는 고결한 꽃망울을 터뜨리며 우리에게 속삭인다. “희망은 정말 사라진 것인가.” 이 물음은 단순한 자연의 풍경을 넘어, 인간의 삶을 향한 은유다. 매화는 계절의 꽃이면서 동시에 인내와 절개의 상징으로 자리해 왔다. 추위 속에서도 꿋꿋이 피어나는 매화는 세속의 때를 벗고자 하는 인간의 지향과 맞닿아 있다. 조선의 선비들은 매화를 벗 삼아 술을 마시고 시를 읊으며 마음을 다스렸다. 매화는 단순한 꽃이 아니라 삶의 철학을 담은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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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통도사 경내에 홍매화가 활짝 피었다. 통도사를 창건한 자장율사의 이름을 딴 자장매는 그 이름처럼 마음을 맑히는 힘을 지닌다. 불교의 청정한 기운과 어우러진 매화는 보는 이의 마음까지 정화한다. 지리산 자락 화엄사에도 매화가 붉게 물들었다. 화엄매라 불리는 이 꽃은 화려한 빛깔로 겨울의 고요를 깨운다. 이 화사한 홍매화들은 사진작가들의 조리개를 분주하게 만들며, 순간을 붙잡으려는 열망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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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는 단순히 계절의 꽃이 아니라, 특정 장소와 결합해 공동체의 기억을 품는 매개체다. 매화는 피어나는 환경에 따라 다양한 이름을 얻는다. 눈 속에 피면 ‘설중매’, 달빛과 어울리면 ‘월매(月梅)’, 빗속에 피면 ‘우중매’라 한다. 이름만 들어도 그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매화는 자연과 인간의 감각을 연결하는 매개체이자, 서정과 상징을 담은 문화적 언어다. 오늘날에도 매화는 여전히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를 준다.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꽃으로서 희망과 시작을 상징한다. 겨울의 매서운 바람을 견디고 피어난 매화는, 우리에게도 인내 끝에 찾아오는 새로운 계절을 믿게 한다. 매화의 꽃망울은 단순한 자연의 순환이 아니라, 삶의 굴곡 속에서도 꿋꿋이 피어나는 인간 정신의 서사다. 매화는 또한 공동체의 기억을 담고 있다. 사찰의 자장매, 화엄매처럼 특정 장소와 결합한 매화는 그곳의 역사와 정신을 함께 품는다. 매화를 보는 순간 우리는 단순히 꽃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장소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함께 읽는다. 매화는 자연과 인간, 역사와 현재를 잇는 다리다. 그리고 그 상징은 현대의 무대에서도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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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동계올림픽에서 최가온 선수는 1차 시기에서 심하게 다쳐 자력으로 일어서지 못할 정도였지만, 포기하지 않고 3차 시기를 멋지게 완주해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쓰디쓴 시련도 매서운 바람도 견디고 나면, 매화처럼 달콤한 봄날이 온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 준 것이다. 매화의 인내와 절개가 스포츠 무대에서 다시 피어난 셈이다. 매화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속삭인다. 겨울이 아무리 길어도 봄은 반드시 온다고. 그 고결한 꽃망울은 삶의 희망을 잃지 말라는 메시지다. 매화는 단순한 꽃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피어난 봄의 상징이다. 인내 끝에 찾아오는 희망, 절개 끝에 맞이하는 새로운 계절, 그리고 공동체의 기억 속에 살아 있는 역사. 매화는 단순한 꽃이 아니라, 우리 삶의 철학을 담은 봄의 전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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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2. 27. 서대문자치신문 칼럼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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