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공간아울에서 연극 '놈 놈 놈'을 관람하고
연극 ‘놈 놈 놈’을 관람하고
솔깃하다. 발칙하고 솔직한 수컷들의 수다. 사랑했던 놈, 사랑하는 놈, 상관없는 놈, 세 남자의 로맨틱 코미디. 남자들의 수다는 90%가 여자 이야기라고 했던가. 남녀상열지사에 관한 이야기라 자칫 가벼워질 수 있다. 하지만, 별다른 무대 테크닉이 없는 상태에서 오로지 배우들의 연기와 대사에 집중할 수 있어서 오히려 진솔한 이야기로 비친다.
사실 남자들이 모이면 반은 욕설이고 사소한 일로 얼굴 붉혀서 유치함의 극치를 보여 준다는데, 이 연극에서도 다를 바가 없다. 십년지기 친구지만 공통점을 찾아볼 수 없는 세 남자가 한 여자를 둘러싼 서로 다른 시각과 다양한 연애관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서 배우들이 옷차림이나 제스처나 걸음걸이조차 본인이 연기하는 캐릭터에 접근하려고 애쓴 부분이 엿보인다. 여자 친구와 추억이 있는 노란 카디건을 늘 걸치고 있는 것도 한 가지 예다.
10년째 짝사랑 중인 ‘철용’은 따뜻한 마음을 가졌지만, 현대인으로서는 좀 답답한 편이다. 친구의 여자 친구를 홀로 짝사랑하고 아파하지만, 친구의 우정 또한 세심히 생각하는 순수 남이다. 그가 어떤 논리를 펼 때는 늘 “예를 들면 ~ ” 으로 시작해서 설득시키려 하자, 친구들이 그 소리 그만하라고 하자 “예컨대 ~ ”로 시작해서 관중을 웃겼다. 필자의 지인 한 분이 꼭 같은 “예컨대”로 시작하는 분이 있기 때문에 실소를 금치 못했다.
8년간 연애를 한 ‘병호’는 소위 말하는 인간적인 캐릭터라 미워할 수 없다.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하던 연애를 통해 자신이 가장 불쌍하다고 하소연하는 돈키호테형이다. 캐릭터에 적합하게 눈이 얼마나 큰지 홈 카메라에 비치는 눈동자가 고양이 눈과 같다. 꽃미남 외모의 ‘승진’은 화려한 말솜씨로 상대를 제압하는 자신감 충만한 삼십 대지만 철없는 사랑을 한다. 부인과 이혼한 후 친구 애인이었던 ‘그녀’를 만나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순정남이다.
치졸하고 이기적이고 소심한 수컷들의 이야기가 남자들의 속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포인트를 가지고 있으므로, 남자들만의 수다가 궁금한 여성들의 숙제를 해결해준다.
사실 남자들이 여성과 잠자리 이야기를 거침없이 해대는 속성 때문에 피해 보는 것은 여성이다. 여기서도 병호가 자기 여자 친구는 잠자리에서 저음으로 우아하게 “으으음”한다고 물꼬를 트자, 승진이 왈 “아니야, 그녀는 소프라노로 소리친다.”고 해서 병호의 비뚤어진 심사를 뒤흔든다. 가만히 구석에서 듣고 있던 철용이 갑자기 끼어든다. “아니야 민지는 솔이야 솔” 딱 한 번 같이 잤지만, 분명 ‘솔’로 소리친다고 주장한다.
병호와 승진이 낙뢰라도 맞은 듯 화들짝 놀라 의자를 뛰어넘고 곤두박질을 쳐 보지만 놀란 가슴이 진정이 안 된다. 그때야 철용이 집 비밀번호가 민지의 생일 날짜임을 간파한 두 친구는 아연실색 황당무계함을 떠나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배신감에 부들부들 떤다.
승진이 민지를 포기하겠다고 하고, 잠시 후 철용이 아직도 자기는 민지를 사랑한다고 하자 병호가 “고백해~” 라고 하는 대목에서 마음 약한 병호의 우정을 느낀다. ‘용기 있는 자만이 미인을 얻는다.’라고 했던가. 용기도 용기 나름이다. 요즘 젊은이들이 몸과 마음을 너무 헤프게 쓰는 건 용기가 아니라 무책임이다.
생일날 애인이 옆에 있어 주지 못한다고 애인 친구와 잠자리를 하는 그런 허약한 마음으로 과연 ‘사랑’을 들먹일 자격이 있을까. 그렇다고 또 친구 애인과 잠자리를 하는 남자는 또 정당방위가 성립되겠는가. 그건 용기가 아니라 배신이다.
여성의 정조 관념을 조금은 성토하는 분위기도 엿보인다. 여성이 애인의 친구 둘과 다 잠자리를 하는 헤픈 여자라면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세 남자 다 그 여자를 발로 뻥 차 버려야 한다. 비뚤어진 사랑놀이를 합리화시키는 승진이는 “참을 수 있으면 사랑이 아니다.” 하며 화장실 가고 싶은데 참을 수 없음을 빗대어 포장하기에 이른다.
“너 재혼할 거야?” “나는 재혼이 아니라 결혼을 할 거야. 그 결혼이 재혼인 거고.” 승진의 뻔뻔한 언변이다.
남자들의 사랑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연극 ‘놈 놈 놈’을 만나러 가 보라. 아직 연애를 못 해본 모태 솔로라면 더욱 이들의 얘기에 귀 기울여 볼 일이다.
자식이 아직 청소년인 부모라면, 요즘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한 번쯤 이들의 얘기를 들어보는 것이 도움이 되겠다. 본인이 요즘 스트레스에 시달린다고 생각하시면, 대학로 ‘공간아울’에서 실컷 웃고 해소(解消)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참고로 여기 병호로 나온 박명훈 배우는 나중 기생충에 출연해서 대박을 터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