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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치 노마드

by 소봉 이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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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착을 싫어하고 틀을 깬 상태. 늘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나는 삶. 넓은 초원을 달리는 자유. 유목성향을 띤 이 모두가 현대인에게는 긍정적이고 도전적인 의미로 부각된다.

칭기즈칸이 세계에서 영토를 가장 많이 정복한 것도 유목민적 특성 때문이다. “성을 쌓는 자 망할 것”이라고 했던 그는 속도전에 능했으며, 驛과 파발을 준비하여 모든 것을 연결했고, 능력위주로 인재를 등용하여 작지만 아주 강한 군대를 이끌었었다.

몽골의 초원에서 유목민으로 생활하며 진화한 그들은 변화를 미리 예측하고 감지하였기에 강력한 능력이 만들어질 수 있었지 싶다.

어느 문학사 대표의 네트워크 구성에 혀를 내두른 적이 있다. 1박 2일 문학기행시 각 지방마다 문인들이 나들목까지 마중을 나와 안내하는 것이다. 덕분에 지역 특산물로 입이 호사를 했고, 이름난 누정들의 역사를 세세히 알 수 있었다. 그 대표의 리더십과 능력을 보면서 ‘노마드’를 떠올렸었다.

21세기 디지털 시대에도 칭기즈칸의 유목민 기질과 리더십이 요구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정착하지 않고 끝없이 움직이는 노마드에 대한 동경을 갖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바이러스가 창궐하여 사회적 거리 두기가 권장되고 있으니 이 유목민 기질을 꾹꾹 누르고 살아야 하는 현실이 왔다. 재택근무와 비대면 업무가 만연되고 있으니, 결국 점심도 배달하여 먹는 경지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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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보니, 주요 포털 사이트마다 도시락 관련 카페와 블로그를 찾아 도시락 맛집을 골라낸다. 배달 앱이 발달하여 오히려 먼 거리까지 주문이 이루어진다. 이렇게 우리의 식생활 문화에 까지 노마드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는 증거이며, 인터넷 시대를 맞아 새롭게 생겨난 풍속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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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두 친구가 생각난다. 점심시간만 되면 책상에 얼굴을 묻고 엎드려 있다가 우리가 도시락을 다 먹고 나면 일어나던 친구들.

둘 다 아이잠작 했지만 아기똥하여 섣불리 같이 먹자고 하였다가 화를 낼 것 같아 말도 꺼내지 못했다. 참으로 철이 없었다. 바로 옆에서 고추장을 한 숟갈씩 퍼 넣고 반찬을 모두 부어 도시락을 아래위로 흔들며 쏟아질 듯 웃어댔으니 참으로 미안했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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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어떤 틀에 사로잡혀 그 괴로운 시간을 견뎠지 싶다. 몬존하게 엎드려만 있지 말고 운동장에 나가 놀이라도 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요즘 아이들처럼 아르바이트라도 했더라면 도시락을 싸 올 수 있었을 것을. 젓가락만 가지고 다니는 일그러진 영웅처럼 이 도시락 저 도시락에 젓가락을 걸치기라도 했다면 지금 내가 이렇게 부끄럽지 않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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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학교에서 급식을 하고, 급식비를 내기가 어려운 학생은 나라에서 책임져 주어서 점심을 거르는 학생이 없으니 다행이다.

지금은 고령화시대라 은퇴한 시니어들의 점심이 문제가 된다. 현역에서 잘 나가던 친구가 은퇴 후 매일 등산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하루는 오늘 점심은 청요리를 먹었다고 해서 전통 중국 요리를 먹었나 보다 생각했더니, 웃으며 OO구청 구내식당에서 자장면 먹었으니 청요리란다.

삼식이란 말이 회자되면서 점심을 집에서 먹지 않으려고 산을 헤매 다니다가 여기저기서 점심을 해결하고 집에 들어간단다.

OO구청 구내식당 메뉴가 좋다는 소문이 파다하여 너도나도 청요리를 먹으러 모여든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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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잠포록하여 김치전을 부치니, 이런저런 생각이 나서 비좁은 가슴에 시린 바람이 들락거린다. 이런 날은 나 또한 후미진 곳 소매업자처럼 궁색하여도, 그들을 불러 구수한 된장찌개에 여러 가지 거섶을 넣어 쓱쓱 우의를 비비고 싶다.

거실에는 오늘을 더욱 저렴하게 준비해야 하는 마트의 전단지가 어수선하다. 시선을 돌리니, 창 밖 소나무 가지사이로 살포시 보이는 하늘은 드넓은 초원처럼 나를 방목시킬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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