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있는 변화로 이끌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을 완벽이라고 말하고 싶다
천재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완벽주의의자였다. 수많은 미완성 걸작을 남긴 이유가 있었다.
다빈치는 인체의 해부학적 구조, 빛의 미세한 변화, 인간의 감정 표현 등을 완벽하게 캔버스에 옮기고자 했다.
그는 작품을 시작하기 전 수많은 스케치와 연구를 거듭했으며,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도 만족할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모나지라도 공식적으로는 미완성 작품이었다. 수년에 걸쳐 이 작품에 매달렸지만 끝내 완성했다고 말하지 않았다. 입가의 미묘한 미소와 배경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완벽하게 표현하고 싶었던 그의 완벽하고 싶었던 집착 때문이었다.
덴마크의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아르네 야콥센도 완벽주의자로 유명하다. 건축물의 문 손잡이까지 직접 디자인했고, 그 집념으로 유명한 '개미의자'를 만들기도 했다.
등받이와 좌석받이가 하나의 조각으로 이뤄지길 원했고, 가볍고 많이 쌓을 수 있는 의자를 만들고 싶었다.
당시 기술로는 합판 하나를 구부려 인체의 곡선을 지지하는 일체형 의자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수없이 많은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다. 구부리다 깨뜨리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결국 합판의 결을 바꾸고, 9겹의 합판을 얇게 붙이는 새로운 기술을 적용하여 자신이 꿈꿨던 유기적 형태, 마치 개미허리처럼 잘록한 라인을 가진 의자를 탄생시켰다.
두 사람에 대해 충분한 공감을 하고 있는 난 완벽주의자다.
내가 관여하는 시스템 개발에서도 패러다임의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예전에는 초기에 완벽한 설계를 하고, 그 청사진에 따라 수개월에서 수년에 걸쳐 묵묵히 개발을 이어가는 방식이 주류였다.
하지만 요즘에는 애자일 개발방법론이 대세가 되었다. 사용자 피드백을 실시간으로 반영하며 빠르고 반복적으로 개발하는 접근법이다.
나 역시 애자일 방법론의 효용성을 잘 알고 있어서 이런 방식으로 진행하도록 요청하고, 빠른 프로토타입 검증 패턴을 선호한다. 그런데도 마음 한편으로는 더 나은 품질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 불만이 쌓인다. 수정 작업을 시작하려다가도 일정 지연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결국 마음에도 없는 '대강대강'이라는 말을 내뱉고 만다
생각해 보니 인생의 대부분을 보낸 곳은 의자였다.
의자가 나를 필요로 했는지,
내가 의자를 필요로 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오랜 시간 의자에 머물게 만든 이유는 '완벽주의로 이끄는 힘'이었다.
자체적으로 만든 첫 번째 프로젝트에서는 문제에 깊이 몰입할수록 새로운 솔루션과 아이디어가 끝없이 쏟아져 나왔다. 잠들어서도 머릿속은 계속 돌아갔고, 세상에 없던 기능들을 구현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연구하고 고안했다.
그렇게 야심 차게 완성한 프로젝트를 세상에 내놓았지만, 초기 반응은 기대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기능이 너무 많다"는 피드백을 받았고, 애써 만든 복잡한 기능들을 하나씩 숨김처리해야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기능을 줄여갈수록 사용자들의 반응은 더욱 좋아졌다.
그저 적당한 수준의 일에는 애초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업데이트버전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것을 세상에 내놓고 싶었다.
기존 방식으로부터의 근본적인 전환점을 제공하려면, 그냥 적당한 수준으로는 안 된다.
완벽을 위한 완벽주의가 아니라,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었다
완벽주의와 실용성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로 인식하고 있다.
때로는 덜어내는 것이 더하는 것보다 강력할 수 있고,
진정한 혁신을 위해서는 여전히 깊이 있는 고민과 완벽을 향한 노력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언제 완벽을 추구하고 언제 적당히 타협해야 하는지를 구분하는 지혜를 갖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