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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여는 의자 08화

느슨함으로 이끈 의자

by 수케시오




아버지는 진중한 분이셨다. 안동김 씨, 경상도 남자, 아들만 있는 말없는 집의 가장.

많은 말을 늘 하는 분은 아니었지만 소중한 이들을 향해서는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눌 줄도 아셨다.

아버지는 가끔 낡은 차일지언정 아들의 이동을 위해 바래다주시거나 태우러 오시는 일도 즐겨하셨다.

아버지와 차를 타고 이동하던 어느 날, 큰 공원 근처에 주차를 하시곤 할 말이 있으시다고 보이는 의자에 앉자고 하셨다. 조심스런 목소리,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아버지는 침묵을 잠시 지키시다가 입을 여셨다. "암에 걸렸다" 그 순간, 나의 시간은 잠시 멈추었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현재를 침범했다.



그날 이후로, 난 죽음에 대해 진지해졌다. 단순히 끝이 아니라, 어떤 연결의 형태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 묵혀두거나 덮어둬야 할 내용도 아니라고 여겨졌다.

그러던 중에 '수케시오(successio)'라는 개념을 성어거스틴의 참회록에서 발견하게 되었다. 라틴어에서 온 이 말은 '뒤따름', '계승'을 의미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단절된 시점들이 아니라, 서로 뒤따르며 연결되는 연속적인 흐름이라는 것을.

아버지의 암 선고와 그로부터 6개월 뒤 맞이한 이별은 시간에 대한 나의 인식을 바꿔놓았다.

시간은 직선적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순환하고 중첩되며, 때로는 역류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보낸 시간들이 현재의 순간과 겹쳐졌고, 앞으로 함께하지 못할 시간들에 대한 그리움이 현재를 물들였다. 과거의 경험들이 현재를 만들고, 현재의 선택들이 미래를 이어가는 끊임없는 연쇄처럼 말이다.


시간의 연속성 안에서 사람과의 연결도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단단히 묶여있는 것이 아니라,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치 실로 연결된 구슬들처럼, 각자의 공간을 유지하면서도 전체적인 형태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와 나 사이에도 이런 느슨한 연대가 있었다. 물리적으로는 떨어져 지내고, 대화도 자주 나누지 않았지만,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런 느슨한 관계가 주는 이로움이 있다. 단단히 묶인 관계는 때로 숨 막힘을 가져다주지만, 유연한 연결은 각자에게 숨 쉴 공간을 허락한다. 아버지와 나 사이에도 이런 여백이 있었기에,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아버지는 나에게 특정한 모습을 강요하지 않았고, 나 역시 아버지를 내 기대에 맞추려 하지 않았다. 그 느슨함 속에서 오히려 더 깊은 이해와 존중이 자라날 수 있었다고 여겨진다.

죽음 앞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죽음을 적으로 여기거나 완전히 외면하지 않고, 삶의 일부로서 느슨하게 받아들일 때 비로소 현재를 온전히 살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무겁고 우울한 주제로의 확장이 아니라, 오히려 '연결'과 '존재'에 대한 고민을 더 이어가게 했다.



이런 느슨한 연결의 의미에서 인사이트 있게 주목하게 된 것은 바로 '선물'이었다. 아버지가 나에게 준 것들을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 느닷없이 건네던 노란 봉투 안 통닭, 양복 주머니에서 꺼내서 주시던 마른오징어, 그리고 힘들 때마다 들려주시던 "괜찮다"는 한 마디가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이 대가를 바라지 않는 진정한 선물이었다.

선물하는 행위의 소중함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것은 상대방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고 축복하는 행위이며, 큰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마음의 표현이다. 이런 선물들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가치를 가진다. 그것들은 우리 사이의 느슨한 연결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역설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다.


현재 시대에 SNS는 삶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이런 현상은 연결에 대한 우리의 갈망을 보여준다. 나는 SNS나 카카오톡의 선물하기 같은 기능들을 느슨한 연대를 위한 도구로 바라본다. 선물할 구실이 발견되면, 그 기회를 이용해서 우린 느슨한 연결로 이어지게 한다. 받는 사람에게 의무나 부담을 주기보다는 그저 마음이 전달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미국의 사회학자 마크 그라노베터는 'The Strength of Weak Ties' 이론에서 직장을 구하거나 새로운 정보를 얻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는 사람은 절친한 친구나 가족이 아닌, 가끔 연락하는 지인일 경우가 많다고 한다. 느슨한 연대는 감정소모는 줄이고 정서적 안정감은 높일 수 있으며, 소위 '따로 또 같이'처럼 개인의 독립성은 지키면서 관계의 즐거움은 선택적으로 누릴 수 있다.


그 의자에서의 대화 이후, 나는 시간과 죽음, 그리고 관계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다. 모든 것이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유동적이고 상호작용하며, 느슨하지만 의미 있는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수케시오는 단순한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삶과 죽음, 과거와 미래, 나와 타인을 잇는 부드러운 끈이다. 그리고 그 끈을 더욱 견고하게 만드는 것은 대가 없는 선물들과 느슨한 연대 속에서 피어나는 진정한 이해였다.







느슨하고 유연한 연결이 주는 공존의 미학.

그 공존의 과정을 다정함으로 빛내주는 '선물'이라는 가치.

발견한 가치는 '수케시오' 프로젝트의 명분으로 이어지고,

그 여정에 각인같이 기억에 새겨진 '느슨함으로 이끈 공원 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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