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전에는 항상 매식을 먼저 한다.
길을 정하고 그 근처에 맛집을 검색해서 간다.
이제는 단골 맛집이 생겨 길보다는 맛집 탐방이 된 것 같다.
길잡이를 처음 시작할 무렵에는 1시쯤에 점심을 먹고 만났다.
두어 시간 걷고 각자 싸 온 여러 가지 간식을 나눠 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러다 모이는 시간을 11시 30분으로 바꾸고 찬바람이 불어 을씨년스러운 날에 처음 매식을 하게 되었다.
참가 인원수대로 간식을 챙기다가 매식으로 바꾸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백팩도 가벼워지고 주로 간식이 사탕, 과자, 과일, 떡 종류라 다소 부담스러워한 길벗들도 있었는데
매식을 하니 원하지 않는 음식 종류가 아닌 바에는 기꺼이 참가하였다.
가끔 길이 좋아 걷고 싶지만 식사 후 합류하면 안 되겠냐는 요청이 온다.
‘모일 때는 제시간에, 중간 탈출은 자유로’를 내세우지만 간곡히 부탁할 때는 물리치기가 쉽지 않다.
매식할 때는 간식을 싸 오지 말라고 하는데도
과일, 과자 등을 가져오는 길벗들이 있다.
몸무게 첫자리를 7에서 6으로, 5로 만들어 놓았는데 다시 6이 될 수는 없었지만
까다롭지 않은 식성이고 누가 주는 것은
거부한 적이 없어서 냉큼냉큼 받아먹다
배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ET형은 아니고 사진 찍을 때나
무방비 상태일 때 도톰하게 나오는 정도?
하체는 유전자가 튼실해서 계속 유지하고 있는데 겉으로 보이는 팔다리는 길고 가늘어
본래 키보다 크게 보인다고 한다.
그렇다면 자부심을 가져도 되겠다 하고 당당히 다니는데 한 눈치 없는 중늙은이와
본 대로 느낀 대로 말을 뱉는 길벗 때문에
충격을 받는 일이 생겼다.
충격까지는 아니고 황-당-황-당-황......
전철을 타면 거의 어르신들 빼고 경로석에 잘 가지 않는다.
심지어 젊은이들은 사람은 많은데 경로석이 텅텅 비어도 앉지 앉는다.
노약자만 앉으라는 표시를 해놔서 그럴 테지만 처음에는 신기했다.
이렇게 붐빌 때 한 사람이라도 앉으면 좀 편할 텐데......
가끔 어떤 자리인지 잘 모르는 외국인들이 앉을 때가 있긴 하다.
앉지 않는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노인 냄새가 난다느니, 민망하게 대놓고 쳐다본다느니,
기침 가래 해소 천식에 쓸데없이 말을 건다느니......
그래서 앞에 서서 가는 것을 꺼리기도 한다.
나는 그래도 그쪽이 빈 틈이 많아 서있기도 하는데 앞에 중늙은이 세 명이 앉아 있었다.
등산복 차림에 벌써 해장술을 마셨는지 불콰한 얼굴에 뭐가 좋은지 실실 웃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뭔가 위기감을 느껴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는 찰나 계속 쳐다보던 그 중늙은이가 입을 떼었다.
어디 가요? 여기 앉아요. 임신한 것 같은데......(실실)
어머, 임신 아닌데요? 배가 나와서 죄송해요.
내 배가 나온 것이 무에 그리 죄송하다고, 한 방 먹인다는 것이 의중과는 다르게 튀어나왔다.
그렇게 나왔나 하고 배를 내려다보며
쑥 들이밀었는데 이미 쏟아진 물.
매식만 할 것이지 간식을 주는 대로 받아먹다가 임신했다는 말까지 들었다.
이제 간식을 끊겠다고 다짐하며 씁쓸하게 발걸음을 옮겨 길벗들과 만났다.
걷다가 또 간식을 주는데 주는 손이 민망할까 봐 받아 들고 백팩에 넣었다.
다시 길을 떠나려는데 한 길벗이 예리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말한다.
아니마님은 매일 걷고 하루에 한두 끼만 먹는다면서 배가 나왔네요.
What the? 어쩌라구, 어쩌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