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은 뜨거웠다.
아무리 더워도 나간다.
날씨에 따라 달라질 사람이 아니다.
국회박물관 구내식당에서 가성비 좋은 점심을 먹고 산책로를 지나 여의도 공원으로 향했다.
평소 같으면 주변 직장인들이 점심 먹고
저마다 아메리카노를 들고 산책하던 곳인데
날씨가 더워서 다들 에어컨이 쌩쌩한 사무실로 들어갔나 보다.
한가한 공원을 지나 샛강 생태공원으로 향하는 데크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나무들로 둘러 쌓인 데크길은 비교적 시원했다.
횡단보도를 건너 샛강생태공원으로 향했다.
가다 보면 맑은 개울이 흐르는데 신을 벗어 놓고 발을 담그는 곳이다.
길벗들과 열이 난 발을 식히려고 맨발로 들어갔다.
나는 운동화 대신에 알록달록 샌들을 신고 와서 가지런히 벗어 놓았다.
몇 년 전에 예뻐서 샀는데 신을 기회가 없어 신발장에 모셔 두었던 샌들이다.
발가락도 숨을 쉬게 할 겸 굽도 낮아서
별로 불편함이 없겠다 해서 신고 나왔다.
그동안은 운동화만 신고 다녀서 샌들을 신고 나갈 일이 없었다.
길 안쪽에 자리한 개울가는 거위 한 쌍이 한가하게 쉬는 곳이기도 하다.
한 마리가 안 보여서 ‘왜 안 보이지? 아픈가? 죽었나?’ 걱정하고 있으니
‘꽥, 죽긴 왜 죽어, 나 여기 있어. 꽥꽥’하고 덤불 속에서 나온다.
누가 마련해 줬는지 아담한 집 한 채도 있는 샘가에
거위 한 쌍이 들락날락한다.
거위와 다정하게 사진도 찍고 물속에서 30여 분간 걷다가 발을 닦고 나왔다.
샌들 신는다고 발톱에 파란색 페디큐어를 한
발이 물을 머금어 반짝반짝 뽀얗다.
샌들을 신고 샛강역으로 향하는데
올 때까지도 멀쩡했던 샌들 한 짝이
올이 풀리며 윗부분이 너덜거리는 것이다.
한 길벗이 머리 묶는 고무줄 세 개를 주면서
임시방편으로 묶고 가라고 했다.
아쉬운 대로 한쪽을 고정하고 걷는데
이건 로마 검투사 신발처럼 보인다.
길벗들과 헤어지고 어디 가서 신발을
사 신어야겠다고 발을 옮겼다.
그런데 몇 걸음 안 가서 나머지 한쪽마저
샌들을 엮은 끈이 스르르 하더니
발등과 바닥을 연결하는 중심이 무너져버렸다.
고무줄 셋을 둘로 나누어 각각 묶을 수는 있었지만
끈이 가늘어 얼마 못 가서 끊어질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결단을 내려야 했다.
다 벗어버리기로.
수명이 다한 샌들을 가방에 구겨 넣고
맨발로 보도블록 위를 걷기로 했다.
짧은 바지에 민소매 웃옷을 입었다면
조깅하는 흉내라도 낼 텐데
햇빛 가린다고 아래위로 감싼 차림에
뛰는 것도 이상하다.
더구나 갈 곳 잃은 파란색 페디큐어가
왜 그리 우울해 보이는지.....
횡단보도 건널 때부터 맨발이었다.
사람들이 서서 신호를 기다리다가,
운전하다 이 맨발의 여자를 보았을 것이다.
여의도 금융가를 지나 또 횡단보도를
두어 번 건널 때도 몇 사람들의 눈이 나의 맨발을 향하고 있었지만 표정의 변화 없이 지나갔다.
요즘 너도나도 맨발 걷기가 대유행이라는데 이제 하다 하다 아스팔트 걷기도 하는구나 했을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따땃한 아스팔트를 맨발로 걸으니 지압이 되는 것 같았다.
혹시라도 있을 껌딱지나 함부로 뱉은
침만 조심하면 되었다.
이건 그냥 자기 위안으로 하는 말이고
얼굴이 화끈거려서 못 살겠다.
내가 부시맨도 아니고 2025년 백주대낮에
여의도 한복판에서 맨발이라니!
더 서울 현대백화점에 들어가려면
더 뻔뻔해져야 한다.
반들반들한 바닥에 맨발이 찰지게 붙는다.
발걸음도 가볍게 당당한 표정으로 발을 내딛지만 속으로는 열불이 난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며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운동용품 파는 곳을 찾아 첫 번째 보이는 가게로 냅다 뛰어들었다.
이것저것 살필 겨를도 없이 신속하게 운동화를 고르니 199,000원짜리 기능성 운동화다.
아, 아까워라! 너도나도 그 신발이 제일 편하다고 권할 때도 사지 않은 운동화를 이렇게 사다니.....
망가진 샌들은 상자에 넣어 버려 달라고 하고
물티슈로 발바닥을 깨끗이 닦은 후
새 운동화를 신고 나왔다.
발에서 느껴지는 청량한 가벼움,
산발한 정신이 정리되는 이 느낌!
아끼면 똥 된다는 옛말이 하나도 그른 말이 아니다.
신발장에 있는 오래된 예쁜 새 신발,
몇 번 신지 않고 모셔놓은 신발.....
모조리 꺼내서 다 버려야겠다.
걸으러 나오는데 무슨 알록달록 샌들,
하나 더 있는 오색 샌들도 아깝지만 버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