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만 사랑타령

by Anima

장이 우즈베키스탄으로 떠난 후 거의 친정에서 지냈다. 매일 주성을 맡기고 데려 오는 고된 생활을 하다가 친정에서 기거하며 윤아와 주성을 보니 심신이 한결 편해졌다. 임신한 채로 직장 다닌다고 안쓰러워하는 어머니는 아침저녁으로 식사를 마련해 주시고 나는 뻔뻔하게도 호사를 다 누렸다.

윤아는 주성을 잘 데리고 놀았다. 학교에 다녀와서 숙제를 마친 후에 주성과 노는 것이 일이었다. 윤아와 10년 차이인 주성을 업어주기도 하고 근처 가게에 데리고 가서 먹을 것을 사주기도 했다. 아버지는 윤아와 주성을 데리고 뒷산 약수터에도 자주 가셨다. 두 아이가 할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손주들 중에서 이렇게 가까이서 사랑과 보살핌을 받고 자란 애들은 윤아와 주성이밖에 없었다. 부모님의 두 아이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다. 바꿔 말하면 내가 그만큼 사랑을 받았다는 것이다. 부모님에게는 아픈 손가락인 나였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장과의 재혼으로 남동생과는 관계가 끊어졌다. 동생 부부는 무조건 내 편만 드는 것이 서운해서 부모님을 자주 찾지 않았고 어쩌다 찾는 날은 친정에 내가 없는 날이었다. 서로 얼굴 봐야 거북하기 때문이다. 나도 동생에게 생전 처음으로 쌍욕을 들은 것이 좀처럼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

장이 외국에 가 있는 동안 나는 딸을 낳았다. 임신 내내 그가 없는 것도 서러운데 출산 때마저 혼자 감당하는 시간이 힘들었다. 이런저런 스트레스와 41살이라는 노령의 산모로 한 달 먼저 출산을 하게 되었다. 급박한 상황에도 도와줄 사람이 없어 혼자 추스르고 직접 운전을 해서 진료받던 대학병원으로 갔다.


출산 후 입원실로 옮겨진 후 방문한 시부모님과 친척에 둘러싸여 축하를 받았다. 남편 없는 출산에 모두 안타까워했지만 서러운 내 마음만 할까. 아기는 2.3k의 미숙아였지만 다행히 모든 기관이 정상이라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지 않고 일주일 뒤에 같이 퇴원을 했다.

장은 모든 큰일이 끝난 후에 우즈베키스탄에 간 지 1년 만에 귀국하기로 했다. 투자금이라고 가지고 간 돈도 다 까먹고 빈 손으로 돌아온단다. 그래도 1년 만에 돌아오는 남편을 마중하려고 차를 운전하고 공항으로 나갔다.


출구에서 나오는 장을 보고 반가워 다가가며 손을 흔들었는데 그는 본 체 만 체 하고 두리번거리더니 친구인지 전 직장 동료인지 모를 남자에게로 간다. 여자도 한 명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옆에 있는데도 소개하지도 않고 그 사람들이 간 뒤에야 나를 보았다.


오는 차 안에서 1년 만에 만난 나를 대하는 그의 태도가 서운하다고 했더니 얼버무리고 만다. 그는 나를 남들 앞에 내세우기 싫은 게 분명하다. 아니면 내게 숨기는 무엇이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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