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제 자리

by Anima

바람피우지 마! 만약 바람피우면 그때는......


장의 말을 듣고 잠시 혼란스럽다.

그런 말은 자신이 거리낌 없을 때 하는 말이 아닌가?

직접 목격하지 않았지만 메일 내용으로 봐서,

속옷 나부랭이 증거물로 봐서 십중팔구

노래 가사처럼 ‘마음 주고 눈물 주고 정도 주고 꿈도 주고’ 마지막으로 몸도 주지 않았겠나?


이 장면에서 언젠가 동료들과 회식 후에

노래방에서 불러 제친 노래가 생각난다.

'님은 먼 곳에'를 부르며 나도 모르게

꿈도 주고를 몸도 주고라고 불러버렸다.

장내가 소란해서 다들 동요 없이 넘어갔다.


잘 믿는 게 탈이다. 그럴 리가 없는데 하면서도

몇 번 우기고 나면 정말 그런가 보다 한다.

어디까지가 바람이냐고 물으려다 참았다.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자.

장과 나는 언젠가부터 합의한 적도 없이

남사친, 여사친은 인정하자고 한 사람들이다.


매일 전화 정도는 넘어가고 차 한 잔, 식사 한 끼는

환영할 바는 아니지만 모른 척해주자.

한 발은 집에 한 발은 밖을 향하고 있는 우리에게

더 이상의 족쇄는 필요치 않다.

더 이상의 확인도 하지 않는다.

보이는 그대로 인정하고 본 만큼만 얘기하자.

나의 상상과 억측에 넌더리가 난다는

장의 말이 아니라도 나 역시 질질 짜는 드라마의 주인공이나 소설 속 인물 노릇하기도 지겨워졌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못 견디겠다.

그러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가 없다.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아이들도

불행하고 결국은 그를 경멸하게 될 것이다.


술에 취한 장이 나간다고 발버둥 치던 날,

눈물과 콧물 범벅이 된 얼굴로 그의 허리를 붙잡고

울부짖던 장면을 생각하면 쓴웃음이 난다.

가끔 그 얘기를 하면 장은 취해서 그랬다고

민망해하며 둘러대기 바쁘다.

자기는 가정을 차버릴 각오를 했는데

내가 전화로, 메일로 그 여자를 위협해서

미수에 그치자 그 서러움을 못 이겨 한 행동을

단지 술 취해서라고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나.

그때 나는 처음 경험하는 그 지옥 같은 상황이

계속될까 무척 두려워했는데......

장이 출가를 말한 적도 있다.

극도의 스트레스로 삶의 의욕을 잃었을 때 가족들 버리고 나갈 각오로 한 번 내뱉은 말이다.

스님들이 들으면 ‘짜식들아, 중 되기는 쉬운 줄 알아? 여기가 인생의 낙오자나 머무르는 도피처인 줄 아나? 어리석은 중생들아!’했을지도 모른다.

정말 그럴 생각은 아니어도 얼마나 스트레스가 심하면 출가를 입에 올렸을까 하면서도

여자 좋아하는 그에게는 천만부당한 일이다.

측은하기 짝이 없다.

그의 스트레스에 일조한 나도 책임을 느끼지만 가장으로서 무책임한 언행이 무척 실망스럽다.

실망하고 낙심하고 다시 회복하고 모른 체하고 다시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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