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맞을래 나중에 맞을래

by Anima

어제 경비아저씨가 전화를 했다.

차 소유주는 아파트 주민이라는 표시가 있는 딱지(스티커)를 새로 발급받으라는 전화다.

장이 타고 다니는 차 번호를 대며, 관리사무소에는 내일 발급받는 걸로 보고할 테니 빨리 신청하라는 것이다.

이전에 발급받은 딱지 모양은 무슨 공무 수행차인 것 같았는데 이번에 새로운 딱지로 바꾸면서 무료 주차 꼼수를 쓰는 운전자들을 색출해 내겠다는 의지가 아닌가 한다.

퇴근하는 길로 관리소에 간다고 해놓고 잊고 있다가 7시가 넘어 생각이 나서 갔더니 당직자가 자동차 검사증과 구 딱지를 가져 오란다.

출근한 장이 타고 간 차의 검사증이 있을 리 없어 '매일 늦게 들어와서 소유주가 올 수 없는데 내일 갖다 드릴 테니 오늘 그냥 주시면 안 될까요?'

궁색하게 말하니 당연히 안 된다고 한다.

그렇게 말하고 나니 참으로 구차하다.

몇 번을 바꾸라고 해도 괜찮다고 하기에 내 것만 발급받았는데 이제 와서 그 차는 왜 발급을

안 받느냐는 독촉은 내가 듣고 다닌다.

가구당 두 대의 차가 있을 때 한 대는 무료고

한 대는 주차비를 내게 한다.

주차 공간이 충분하니 가구당 두 대는 무료로 해주면 좋겠지만 관리 규약이 그러니 할 수가 없다.

어차피 해야 할 일도 미루는 장의 성향 때문에 늘 불만이다.

매는 먼저 맞고 돈주머니는 나중에 풀라는 말이 있다.

이왕 맞을 거면 먼저 맞자, 어차피 낼 돈인데

왜 미루냐는 생각과 버틸 때까지 버티다가 돈주머니도 그때 풀자는 의견의 충돌이다.

한 달에 만 원이라는 주차비 때문에 주민들은 거의 발급받은 새 딱지 발급을 미루고 있는 장의 심사가 이해되지 않는다.

내일은 일찍 와서 관리소에 가보라고 했더니

또 약속이 있다고 한다.

네게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니? 앓느니 죽지.

한심한 듯 바라보다가 차로 가서 검사증을 챙기고 구 딱지를 떼가지고 왔다.

사실은 매를 먼저 맞는 것이 낫다는 말을 신뢰하지 않는다.

중학교 때 총주번이라는 제도가 있어 담임 선생님이 주번교사일 때 학생 10명이 동원되었다.

나도 그중의 한 명이 되어 청소 상태 점검을 마치고 교실에 들어와서 앉아있었다.

잠시 후 프렌치불도그 같은 담임이 들어오더니

‘총 주번 다 나와!’하고 소리치는 것이다.

무슨 일인가 10명이 쪼르르 나가서 일렬로 섰는데

담임이 손바닥을 내밀라며 대걸레로 때릴 기세다.


배운 대로 '매도 먼저 맞으면 낫다'는 속담을 신봉한 내가 맨 앞에 섰다.

그 두꺼운 대걸레로 정확히 10대를 맞았다.

뒤로 가면서 힘이 빠져 9, 8, 7, 6대로 줄어드는 것을 보았다.

방과 후에 ‘미워서 때린 것이 아니다. 청소 점검을 끝내지 않고 교실에 들어와서 그런 것이다.’

때려서 미안하다는 사과인지 변명인지 모를 연설을

30분간 하는 동안 고개 한 번 들지 않고 듣고 있었다. 담임의 이름에 충 자가 들어 있어서 속으로 생각했다. '이제부터 너는 선생이 아니고 벌레충이다!'

집에 가서 시퍼렇게 퉁퉁 부은 손바닥을 내보이니

부모님은 약만 발라주며 안타까운 마음만 토로하고

담임에게 항의 한마디 하지 않으셨다.


이런 아픈 과거 때문에 그때부터 매는 가능하면 늦게 맞을 것을 주변에 권하고 있다.

장에게도 말한 내용이다.

그러나 이번 것은 그것과 다르지 않은가.

모두 장의 게으름과 자기가 하는 일 외에는

다 하찮다는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일이다.

인생 한 방이면 된다고 큰소리는 치는데

매일 술만 먹고 빈손으로 들어오는 장을

언제까지 두고 봐야 하는지 모르겠다.

월, 수, 금,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