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딸

by Anima

장이 제주에 가 있는 동안 친정에서 지냈다.

요즘 아버지의 기침이 심해져 병원에 모시고 갔더니 폐에 염증이 생겼단다.

60년간 피운 담배를 1년 전에 끊으셨지만 너무 늦었다. 연로한 86세라 조직 검사를 하지 않기로 했다.

아버지는 수십 년간 일기를 써오셨다.

우리 형제자매들의 결혼생활, 손주들의 성장 과정 등을 그대로 기록을 해놓으셨다.

그중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나다.

이 진성과 못 살겠다고 들락날락할 때

하나도 빠짐없이 그날을 기록해 놓으셔서

이혼소송 문서를 작성할 때 큰 도움이 되었다.

폐에 염증이 생긴 이후로 아버지는 입원을 하시고

쓰던 일기도 중단하셨다. 병원에서는 2주 정도 경과를 보다가 더 이상 치료할 것이 없다고고 싶은 것 먹으며 집에서 편히 계시라고 퇴원을 하게 했다.


퇴원을 한 이후에는 거동을 못하고 자리에 누워계셨다. 아버지는 병원 가기 전까지 기침만 할 뿐 멀쩡했는데 이렇게 됐다고 병원 탓을 하기도 했다. 주로 어머니와 이웃에 사는 큰언니가 병시중을 하고 미국에 사는 작은언니가 한 달 동안 머물면서 아버지를 돌보기로 했다.

직장에 다니던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아버지는 권하는 유동식도 겨우 한두 숟가락만 입에 대고 손을 저었다.

딸들에게 대소변 시중을 받는 아버지 스스로 음식을 거부한다는 생각도 했다.

점점 허약해지는 아버지가 미국에 출장 간 남동생을 제외하고 우리를 차례로 불렀다.

내 차례가 되어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아버지, 셋째 딸 왔어요.


애고, 너 혼자 애 셋을 데리고 어떻게 하니?

우리 주리 불쌍해서 눈을 어떻게 감어.

내가 마음이......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는 아버지 앞에 에 엎드려 나도 펑펑 울었다.

장은 있으나 마나 한 존재, 경제적으로나 심적으로나 힘들다는 것을 이미 알고 계셨다.

아버지는 딸과 아들을 차별하지 않고 키우셨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지 않고 솔선수범하시면 우리는 그것을 본받고 자랐다.

1차에 떨어져서 대학을 가지 않으려는 내게 사범대학교를 권하시고 원서도 직접 접수해 주셨다. 내가 교사가 된 것도 다 아버지의 뜻이고 덕이었다.

전 남편 이 진상 때문에 갖은 수모를 당하시고, 속없이 사랑타령하던 나와 장과의 결혼이 무리라는 것을 알지만 딸의 행복을 위해 손녀를 맡아 주시면서까지 재혼을 허락하셨다.

직장 다니는 동안에는 애 셋을 돌봐주시며 다른 남매들과 비교하면 넘치는 사랑을 주셨다.

가장 불효를 한 내가 가장 사랑을 많이 받은 셈이다.


병석에 누워서도 가장 걱정하시는 것은 나와 아이들이었다.

이 막심한 불효를 어찌할까,

이러고도 장 자성과 계속 살아야 할까?

월, 수, 금,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