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윤아는 내가 사는 아파트 같은 동 12층으로 이사를 왔다.
오래된 빌라에 살던 윤아는 2년밖에 안 된 새 아파트라 기분이 좋아 이 방 저 방 돌아보았다.
이제 빌라가 무너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네.
새 아파트라 좋다, 한강도 보이고!
빌라에도 자기 방은 있었지만 아파트에서 처음 가져보는 자기 방을 보며 좋아하는 윤아에게 미안했다.
녹이 슨 베란다를 보며 빌라 무너질까 걱정하고, 모르는 남자가 몇 번 벨을 누르고 갔다고 무서워하던 윤아에게 어릴 때부터 이런 기쁨을 주었어야 하는데 윤아가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나이다.
엄마는 아버지를 여읜 충격과 함께 30여 년을 사시던 빌라를 팔고 내키지 않는 이사를 한 탓인지 별로 말씀이 없으셨다.
엄마, 이사 와서 우리랑 가까이 살게 되니 좋지요?
그래, 좋다...... 아파트가 깨끗하고 앞이 시원하네.
윤아가 좋아하니 됐다.
아버지 없는 집에 윤아만 있으면 된다고 하셨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장남, 며느리와는 같이 살지 않겠다, 윤아 데려가도 나는 여기 살겠다 하시다가 도저히 혼자 계실 자신이 없어 마지못해 나를 따라 옮기셨다.
당신 소유의 집을 처분하고 전세도 아닌 월세를 얻었다. 내 아파트와 합쳐서 하려던 매수는 형제들이 반대를 했고 전세를 얻으려니 빌라 판 돈으로는 보증금이 턱없이 부족했다.
어쨌든 엄마와 윤아의 거취 문제를 해결하고 한시름 놓았다. 아래, 위층 오고 가며 두 집 살림을 하다시피 했다. 윤아가 학교에 가고 나면 엄마 혼자 베란다에 앉아 밖을 구경하셨다.
다리가 불편해서 혼자서는 가까운 놀이터에 나가지도 못하셨다. 윤아와 내가 있어야 산책을 나갔다.
아침이면 다 나가고 혼자 얼마나 쓸쓸하고 외로우셨을까?
빌라 2층에서 살다 갑자기 12층 아파트로 올라와 그런지 가끔 어지럽다고 하셨다.
약을 드시지만 고혈압 때문에 그런가 보다 했다.
가장 노릇 하지 않는 장은 사위 노릇도 하지 않았다. 가끔 밖으로 나가 외식을 할 때 인사하고 한 자리에 있는 정도였다.
실은 나도 할 말은 없다.
결혼 초에는 시집에서 손주 보고 싶다고 일주일이 멀다고 오라고 한 것을 점점 이주일 간격으로 줄였고 애들이 크면서는 애들만 데리고 다녀오라 하고 나는 명절과 시부모 생일에나 얼굴을 비추는 정도였다.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않는 한 장과 시집에 간다는 것이 떳떳하지 않게 느껴졌다.
이제는 엄마를 모시면서 더 이상 형식적인 예의조차 차리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