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한 주리가 사는 법

만남과 결혼 그리고 이혼(18)

by Anima

# 불신


봉 주리는 윤아를 재우고 놀이동산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해 본다.

P강사가 먼발치에서 보고도 모른 체하고 다른 곳으로 간 이유가 무엇일까?


P강사가 윤아를 대하는 태도는 여느 어른들과는 달랐다.

데리고 밖에 나가면 보는 사람마다 예쁘다고 잘 키우라는 말을 듣던 아이인데,

뒷산에 놀러 갔을 때, 크면 남자깨나 울리겠다는 등산객의 말에 언성을 높여 싸울 뻔한 일도 있었는데, 그는 윤아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어른들이 아이를 처음 볼 때 하는 말,

몇 살이냐고 물어보지도 않았다.

미국에 남겨 두고 온 아들 생각이 나서 일부러 회피하는 것이라 짐작할 뿐이었다.


둘이 만날 때 야외로 놀러 가는 경우를 제외하고 봉 주리 차를 세워두고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항상 앞서 가는 일이 많았다.

미국 생활 12년이라고 해서, 품격 있는 신사의 외모를 하고 있어서 내심 신사도를 보여 줄줄 알았다.

남자라 하면 보통 여자를 먼저 태우고 자기가 타지 않나,

걸을 때는 차도가 위험할세라 자리를 바꿔 걷지 않나,

차 안에서 갑자기 급브레이크를 밟을 때 앞으로 쏠릴까 봐 손으로 막아 주지를 않나,

식당에서는 맛있는 것을 먼저 먹으라고 앞으로 밀어주지 않나......

그런 것과는 영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그에 대한 봉 주리 행동이 그러했다.


P강사를 만날수록 한 번 결혼에 실패한 자신과 어린 윤아를 지켜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서질 않았다.

대학 때 소개팅 몇 번 하고 맞선으로 몇 번 보고 만난 사람과 신중하지 못한 결혼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연애,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고등학생 시절 선생님을 향한 흠모, 친구 오빠와의 짧은 만남도 사랑은 아니었다.


전 남편이 봉 주리의 첫 남자라는 사실은 잊고 싶을 만큼 늘 거북하다.

결혼하기 전에 대학 시절 친구들과 모였을 때 일이다.

만나는 여섯 명은 다 미혼이었고 남자 친구조차 없었다.

봉 주리만 성숙해 보였지 다 조무래기들처럼 작고 아담했다.


너희들 솔직히 말해 봐. 아직 처녀야? 숫처녀야?

야, 그런 걸 뭘 물어보니? 무경험이지. 신대륙이야.

결혼 전에 다 경험하고 간다는데 혹시 주리는?

난 그런 거 싫어. 사실 딱히 열정적으로 사랑해서 하는 것도 아니고,

남들도 다 하는 결혼이니까 적당한 선에서 결혼하는 거지.


그 친구들은 차례로 결혼을 했고 잘 사는지는 모르지만 봉 주리는 이혼이라는 이력을 쌓았고

이제 또 한 남자를 그의 이력에 추가하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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