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 주리는 두 줄이 뚜렷한 임신테스트기를 든 채로 S의 품에 안겼다. 언뜻 스친 S의 불안한 표정과 함께 봉 주리 역시 이 상황에 마냥 기뻐할 수는 없었다. 계획하지 않았고 격정적 사랑에 나름 대비를 한다고 했지만 둘 사이에 생긴 사랑의 결실 앞에 기쁜 한편으로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다.
이제 우리 어떻게 해? 윤아도 있는데, 부모님께는 뭐라고 말씀드려? 좋아하다 애가 생겼다고 해? 학교에서는 내가 이혼한 상태라는 것을 다 알고 있는데 배가 부르면 어떻게 다녀? 자기 부모님께는 인사도 못 드렸는데 불안하고 무서워.
잠깐 진정해 봐. 걱정하지 마. 내가 다 해결할게. 결혼하면 되잖아. 먼저 내일 당장 자기 부모님께 인사드리러 가자.
S는 언뜻 불안감이 스치던 아까와는 다르게 의연하지만 밝은 표정으로 봉 주리를 달랬다. 나이 차이에 상관없이 봉 주리를 오빠가 동생 돌보듯이 하는 S다. 늘 그랬듯이 이번에도 S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다음날 봉 주리는 S와 부모님 앞에 섰다. S는 앉기 전에 먼저 부모님께 큰절을 올렸다.
처음 뵙겠습니다. 장 자성이라고 합니다. 주리 씨를 만난 지 몇 개월 됐는데 인사가 늦었습니다.
그래. 주리에게 대강 얘기는 들었네. 주리보다 5살 아래라는데 의젓하게 보이는구먼. 부모님 계시고 세 남매 중에 장남이라고? 맏아들의 무게가 만만치가 않지. 지금 하는 일은 자동차 영업사원이라고 들었네. 젊을 때는 영업을 먼저 시작해서 사람 만나며 사회 돌아가는 것도 익히는 게 좋긴 하지.
네, 올해 졸업을 해서 이제 시작입니다. 주리 씨보다 조금 어리지만 겉으로는 제가 워낙 노안이고 주리 씨는 젊어 보여서 별 차이를 못 느낍니다. 부모님 앞에서 민망하지만 제가 주리 씨를 사랑하게 됐습니다. 앞으로 어려운 일이 많겠지만 부모님께서 믿어 주시면 얼마든지 헤쳐 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장 자성, 이제는 S가 아닌 자성은 주리와 함께 다섯 살 아래라고 백색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부모님이 받을 충격을 덜하기 위해서다. 열한 살 아래라고 하면 당장 나가라고 재떨이라도 날아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결혼한 다음에는 사실을 알더라도 뭘 어쩌시겠느냐는 배짱이다.
자성은 주리와 있을 때도 남자다웠지만 부모님 앞에서도 듬직하고 당당한 인상을 주었다. 영업직이라 그런지 말도 매끈하게 잘해서 부모님에게 일단은 합격 점수를 받았다. 주리가 마음에 들어 하는 그의 듣기 좋은 목소리도 한몫을 한 것 같았다.
주리는 자성을 데리고 친정을 나와 한껏 편한 마음으로 부드러운 입맞춤을 나누었다.
이제 아무 걱정도 하지 말고 잘 자. 자기도 느꼈지, 부모님이 나를 좋게 생각한다는 눈빛. 이제 우리 아기도 생겼으니 마음 편하게 가지고, 조만간 우리 부모님께도 말씀드리고 날짜 정해서 만나자.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어!
자성을 데려다주고 현관으로 들어서는 주리에게 어머니의 말이 꽂힌다.
참 듬직하게 잘 생겼네! 말도 어쩜 그렇게 잘하니? 나는 저런 사윗감을 원했어. 그런데 자동차 영업직이라 좀 꺼려지네. 안정된 직업이 아니잖아. 사무직도 아니고 영업직이라니...... 같은 교사나 공무원이면 얼마나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