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서사시

by Anima

그 남자와 그 여자 대화상대로 만났습니다.

서로 한창 좋은 나이, 30대라 대화가 잘 통했습니다.

서로 가정을 가진 사람들임을 알았어도 문제될 것 없습니다.

그저 대화 상대일 뿐이니까요.


마음이 통하니 서로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졌습니다.

상대방의 목소리를 확인하니 더욱 친밀감이 느껴집니다.

자주 오래 서로의 목소리로 위안을 받지만 뭔가 부족합니다.

목소리가 이렇게 좋으니 생김새는 어떨까?

설레는 마음으로 만났습니다.

기대한 대로 서로의 이상형임을 확인합니다.

늦은 만남을 원망하며 자주 만납니다.


집에 있는 아내는 이상한 기운을 느낍니다.

남자에게 전화하면 자주 통화중입니다.

핸드폰 사용료가 유달리 많이 나옵니다.

털털했던 사람이 깔끔 떨면서 집안 어지러운 것 못 참습니다.

멀쩡한 집안이 좁다며 답답하답니다.

자꾸 바람 쐰다고 나갑니다.

이상하지만 그래도 남자를 믿었습니다.


믿어야지 하면서 하루하루 보내던 아내는 남자가 던져놓은 전화기를 들었습니다.

재다이얼을 누르니 나른하고도 고운 여자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서로 충격 속에 몇 마디하고 끊었습니다.


남자는 요즘 멍하니 있는 시간이 많아집니다.

아들이 매달리는 것도 귀찮아하고 여자가 뭘 물어도 못 듣거나 한참 후에 답합니다.

여자는 가정에 먹구름이 다가오는 것이 두려워 남자에게 추궁했습니다.


남자는 완강히 부인하다가 단지 친구라고, 몇 번 만났을 뿐이라고

당신이 싫어하면 만나지 않겠다고......

아내는 믿고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남자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울며 호소했습니다. 다시 만나면 아이들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위협하고 애원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걸고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고 맹세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남자는 또 지키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그런 사랑 없습니다.

세상에 그런 공주, 천사 없습니다.

세상에 그렇게 애틋한 마음 없습니다.


아내는 통곡했습니다. 이런 고통 다시는 없습니다.

지옥을 경험했습니다. 그 여자를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한다면 우리 애는?

그 여자가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쁘다면 그럼 나는?

내 사랑, 내 사랑, 내게 해주던 그 말은?


역겹습니다. 남자의 가증스러운 위선이 혐오스럽습니다.

몇 번 만난 친구였다는 그 말을 믿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기에

믿으려고 애쓴 아내는 눈물이 납니다.


결국은 그 여자를 떠나보낸 남자가 안쓰럽습니다.

그 여자가 좋아하던 노래를 듣는 남자의 공허한 눈이 아내를 슬프게 합니다.

창밖을 바라보는 남자의 쓸쓸한 모습이 마음에 걸립니다.

‘내 사랑, 내 사랑’ 내게 해주던 그 말을,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 내게 해 주던 그 말을

언제 기억 속에서 지울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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