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두 시다. 세 시간 정도 잔 것 같다.
거실에 불은 환한데 현관에 장의 구두가 없다.
오늘은 세 시를 넘기려나?
설날 이후 계속 1시 아니면 두 시 넘어야 귀가한다.
이제 또 하나 적응해야 할 일이 생겼다. 시간을 재지 말라.
처음에는 왜 저러는지 불안하고 예민해져서 잔소리도 했지만 당분간은 그냥 봐달란다.
그럼 봐주지. 3시가 안 돼서 장이 들어왔다. 술에 취하지도 않았다.
재워 달란다. 글 쓴다고 조금 지체하니 등을 보이며 돌아 누웠다. 삐지기는 잘한다.
처음에는 머리를 성의 없이 쓰다듬고 다음에는 살뜰하게 만져 주었다.
서로 상처를 조용조용 긁었다..
나보다 외로운 사람이다. 그래서 답답하다고 바람 쐰다고 늦게 들어온 것이다.
오늘의 대화는 채팅, 메일, 섹스리스......
나보다 재주가 많은가 보네, 매일 누군가를 만나고. 친구들과도 연락 자주 하고 만나나?
채팅을 먼저 시작한 사람이 친구가 많겠지.
요새는 내게 메일 왜 안 보내? 메일이 안 오니 심심하네.
다른 여자들이 보내 줄 텐데 나까지 보낼 필요가 있나?
한때 장에게 메일을 보낸 때가 있었다.
이 메일은 또 언제 읽을까? 쓰고 나서 왜 안 읽지 하면서 확인했는데 이제 가만있어 볼까 해.
요즘 많이 힘들지 하면서 말로만 하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안 해 주니 좀 서운하지?
굳이 변명을 하자면 노력은 하고 있지만 능력과 체력의 한계라고나 할까?
그보다 내가 요즘 최대로 노력하는 거는 당신 신상에 대하여 궁금해도 묻지 않는 거야.
일상적인 것이라도 의문이 생겨 물으려 하다가도 아니야, 물으면 안 돼, 하고 참게 되지.
내가 좀 맹탕이라는 것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싶었는데 그것이 때로는 당신을 짜증 나게 하는지도 몰라.
장남의 무게와 풀리지 않는 일에 대한 스트레스에 맹탕인 나를 봐야 하는 짐까지 지게 하니 미안해.
당신이 나를 택할 때 제1 조건이 편하다는 것일 텐데 자꾸 어긋나서 실망스러웠을 거야.
그래서인가, 자꾸 혼자 여행 가고 싶다고 해서 나를 칠팔월 복날 개 떨 듯이 불안하게 하는데
막연하게 말하지 말고 설득력 있게 말해봐. 수긍이 가면 마음 편히 보내줄게.
나도 노력은 하지만 아직 수양이 덜 돼서 편히 보내 줄 수가 없어.
내가 당신에게 어떤 존재인가 자존심도 상하고 남편이 아닌 남자로서 누리고 싶은 영역을
이해하지 못하는 좁은 소견과 소유와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도 싫어.
용기를 주려고 쓴 메일이 숙제를 준 셈이네.
남들은 활달하고 성격 좋다고 하는데
당신에게만은 왜 이리 속 좁은 여자인지 모르겠어.
다음에 또 쓸게.
아직 사랑하는 마음 주체할 길은 없는데......
저런 메일을 다시 받기를 바라는지, 조금 섭섭해하더니 그뿐이다.
한 여자로부터 받는 메일에 행복하다고 했으니까.
둘 사이를 인정해 줬으면 계속할 것이지
여자가 꼬리를 내리는 것 같다.
나 같으면 그렇게 애타는 사랑 고백을 받으면 끝까지 포기를 안 할 텐데......
여자들이 왜 잘 생긴 그를 외롭게 만드나?
갑자기 그가 측은해진다.
잠깐 안아주는데 옅지만 향긋한 냄새가 난다.
아직 이도 안 닦았는데...... 아닌가?
전 같으면 수상하다고 캐물었을 텐데 묻지 않는다. 상관없다. 묻는 게 스트레스다.
민감한 사안에는 입을 다무는 게 상책이다.
아, 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