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한 주리가 사는 법

만남과 결혼 그리고 이혼(8)

by Anima

# 이 진상의 협박


봉 주리가 출근 준비를 하려고 잡은 손을 슬며시 놓자 윤아가 눈을 떴다.

등을 토닥이며 다시 재우려는데 밖에서 큰소리가 난다.


윤아야, 아빠 왔다. 아빠가 제과점을 차렸어!

이 진상이 1층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윤아야, 나와 봐. 아빠가 왔어! 이제 제과점 사장이야. 잘 살 수 있어!

언제는 교수가 됐다고 소리치더니 이제 제과점 사장이라고 큰소리친다.

새벽에 동네 시끄러우니 아버지가 윤아를 이불로 감싸 안고 나간다.

그리고 베란다 위로 윤아를 들어 보인다

윤아는 잘 있으니까 걱정 말고 가게.

아침부터 이게 웬 소란인가?

딸 보기가 부끄럽지도 않은가?


윤아를 본 이 진상은 몇 마디 더하더니 가버렸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봉 주리는 자신 때문에 부모님까지 고생하신다고 속상해한다.

이 진상이 협박 메일을 보낸 이후로 불시에 찾아오는 일이 잦아 불안하기도 했다.

메일 내용을 실행하지 않았지만 매일 전화를 수십 통씩 해댔다.

하루라도 전화를 걸지 않은 적이 없어 봉 주리가 출근하고 나면 부모가 그의 전화를 상대해야 했다.

그래도 꺼놓을 수는 없어 수시로 울리는

전화 벨소리를 줄여놓는 수밖에 없었다.


봉 주리는 주리대로 학교에서 무차별 전화로 속을 썩이고 있었다.

동료와 늦게까지 업무를 같이 하고 있을 때다.

사회를 가르치는 이 선배는 주리가 어떤 남자를 만나서 결혼을 하고 딸 하나를 낳고

어떻게 사는지 자세히 모르지만 늘 당당한 모습의 주리가 궁금한지 가끔 호기심을 보일 때가 있다.

자기는 참 부지런하다. 매일 옷을 갈아입고 옷도 세련되고 멋있어. 머리카락은 어쩜 그렇게 윤기가 나냐, 시댁이 강남 부자라며?

자기가 어떤 남자랑 사는지, 참 부럽다.


오늘 일만 아니었으면 그 부러움과 신비감이 지속됐을 텐데 전화 한 통으로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그 전화를 직접 받을 것을, 선배는 전혀 모르는 사람인 그에게서 온 전화를 흥미롭게 듣고 있었다.

수화기 너머 들리는 말은 너무 커서 주리에게도 생생하게 들린다.


거기 봉 주리라는 선생 다니죠? 그 여자 어떤 여자인지 아세요? 하나 있는 딸 팽개치고 저만 잘 살겠다고 나간 여자예요. 그런 여자를 그 학교 교사로 근무하게 하면 어떻게 합니까? 내가 교육청에 신고하면 학교 망신 아닌가요? 빨리 그만두게 하지 않으면 당장 신고할 테니까 그리 알아요.


누가 전화를 받았는지, 누구와 통화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기가 막힌 타이밍은 당사자가 바로 현장에 있었다는 것이다. 가끔 이상한 사람이 자신을 밝히지도 않고 주리 흉을 속사포처럼 쏴대고 끊어버린다는 말을 사무보조원에게도 들은 바가 있다. 주리는 학교를 그만두지 않는 한 얼굴에 철판을 깔고 다녀야 할 판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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