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그러니까 결국 이 얘길 꺼내 놓을 수밖에 없는 거다. 그게 아주 미칠 것 같이 재미있는 얘기이건, 까무러치게 지루한 얘기이건, 그건 상관이 없다. 그냥 내가 이 일을 겪었기 때문에, 꺼내지 않고는 못 배기겠기 때문이다.
이 얘길 끝내고 내가 다시는 아프지 않았으면 한다. 이걸 듣고 있는 너도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왜 재수 없고 불길한 그런 걸 꺼내 놓으면, 그게 혹시 볕에 말라죽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혹, 그렇진 않더라도 녀석을 표식처럼 이용해 멀리 돌아다닐 순 있다. 혼자 넓은 들판을 걸어야 하거나, 어두운 길을 헤맬 때, 놈이 보이면 휘파람을 부를 순 있다. 그러면 서로가 어디쯤인진 알 수 있는 거다. 그게 내가 지금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다.
지금 나는 속이 아주 미식 거리고 얼굴이 갑자기 붉어지기도 하고 그렇다. 녀석이 아마 내 깊숙한 곳에 숨어 썩고 있었기 때문인가 보다. 녀석은 지독한 냄새를 풍기며 나를 물어뜯으려 했었다. 이건 정말이다. 그 통에 나는 죽어버리는 줄 알았다.
녀석을 죽일 수 있었던 건 행운이다. 세상엔 더럽게 재수 없는 일들도 일어나지만, 또 그게 운 좋게 아무일도 아닌 것처럼 되버리기도 하고 그런다. 아무튼 그렇다.
일단 종로에서부터 시작해야겠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엔 종로만큼 미친 곳도 없으니까 말이다. 종로엔 노숙자들이 정류장 벤치에 누워 냄새를 풍기기도 하고, 넥타이들은 머리에 기름을 번지르르하게 바르고 돌아다니기도 하고 그런다. 난 그런 건 아주 밥맛이다. 왜 밥맛이냐 하면, 넥타이들은 누가 눈앞에 있건 남에겐 전혀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노숙자들이 쉰내 나는 손가락을 디밀며 구걸을 해도 넥타이들은 앞에 아무것도 없는 양 시계나 들여다보고 그런다. 놈들이 관심 있는 건 오로지 비싼 향수와 남들이 자기를 어떻게 보느냐는 것뿐이다. 나는 그런 건 아주 재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건 밥맛이다.
아무튼, 그날 나는 종로로 공부를 하러 가는 중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공부를 하러 가던 중인 건 아니고, 혹시나 해서 가던 중이었는데, 뭐가 혹시냐 하면, 혹시 종로에 가면 공부가 잘되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왜 공부를 하고 있었냐 하면 그때 나는 역사나 문법 뭐 그딴 걸 공부하고 있었는데, 왜 그런 걸 공부하고 있었냐 하면 공무원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근데, 사실 꼭 공무원이 되고 싶었던 건 아니고 혹시나 해서 공무원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왜 그걸 준비하고 있었냐 하면, 사실 그냥 뭐가 돼야 할지 몰라서였다.
왜 뭔갈 해내야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그걸 해낸 사람들의 이야길 무슨 성경 구절 보듯 들여다보고 그런다. 나도 처음엔 그랬다.
- 바위를 뚫는 것은 계속해서 떨어지는 물방울이다.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땐 Jesus Christ! 알라라도 만난 것처럼 기뻤다. 그건 사법고시에 합격한 어떤 고아 출신 여자가 썼던 합격 수기였는데, 그 여잔 돈도 없고 빽도 없어서 낮에는 빵을 팔고 밤에는 칠판을 닦으며 공불 했다고 한다. 그 얘길 처음 들었을 땐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라도 쳐주고 싶었다. 정말 대단한 여자지 않는가. 누구 하나 도와주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혼자서 그 어려운 시험엘 붙고 말이다. 그런 여잔 정말 나라에서 상이라도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날부터 나도 죽어라 몸땡이를 돌에다 내던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씨팔. 빌어먹을 내 돌맹이는 꼼짝도 하질 않는 거다. 이러단 내가 먼저 죽겠다 싶었다. 결국엔 다 뻥이었던 거다.
아무튼 낙수가 어떻고 바위가 어떻고 지껄이는 인간들은 아주 엉터리들임에 틀림이 없다. 아니면 지 영웅담을 신문에 싣고 싶어 안달이 난 멍청이들이거나. 그딴 인간들은 남의 실패 따위에는 관심도 없다. 관심이 있다면 오로지 자기 위로를 하기 위해서나 관심 있는 척을 하는 거겠지. 그래야 자기가 잘살고 있다고 착각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종각역 3번 출구에서 밖을 바라보니 빗방울이 사방팔방 튀고 있었다. 양말이나 신발 따윌 다 버리고 저길 걸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당장 원래 있던 독서실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나는 원래 자취방 근처에서 공불 하고 있었다.
거기 원장이 아주 죽여주는 인간이었는데, 공부의 신 같은, 뭐 그런 인간이었다. 서울대도 나오고 행시도 붙고 해서 높은 공무원까지 했는데, 퇴직하고 할 일이 없으니까 독서실을 차린 것이었다. 나는 그게 아주 멋있는 짓이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원장이 적어도 자기 적성에 맞는 일을 기어코 찾은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옛날에 한 공부했겠다, 독서실에 앉아서 공부 안 하는 학생들 잡아다 훈계도 좀 하고, 조언도 좀 해주고 말이다. 나는 그를 좋아했다.
원장은 독서실에 나올 때에도 항상 양복바지에 체크무늬 셔츠를 입고 나왔다. 머리를 반으로 곱게 넘기고 정확한 시간에 정확한 자리에 앉아있었는데, 안경을 걸치고 꼭 그 자리에서 신문을 읽었다. 독서실 입구에 있는 유리벽으로 가려진 자리였는데, 꼭 거기 앉아서 신문을 보는 척하면서 애들이 왔다 갔다 하는 거를 체크했다. 신문을 보는 척 안경 밑으로 눈을 착 내리깔고 말이다. 그래서 오줌을 싸러 가거나 담배를 피우러 갈 때마다 그가 나를 쏘아보는 것 같아 오줌발이 서기도 하고 그랬다.
어두운 방에서 졸고 있으면 그가 모기채를 들고 덜컹덜컹 의자를 밀려 돌아다니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그 소리가 들리면 나는 졸다가 일어나서 허리를 곧게 펴고 노트에 동그라미나 엑스를 더욱 크게 그리곤 했다.
틱. 모기들이 전기 모기채에 걸려 타 죽는 냄새를 맡으면 집중력이 올라가고 그랬다. 그런 면에서 그는 아주 제대로 된 교육자였다. 왜냐하면 뭐 하나를 읽다 다리를 긁고, 뭐 하나는 외우다 팔뚝을 긁고 하는 짓은 사람을 아주 미치게 만들기 때문이다. 거기다 싸구려 모기채로 모기를 잡으면 탁탁 소리가 날까 봐 꽤나 비싸 보이는 고급 전기 모기채를 쥐고 열람실을 돌아다녔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그는 배려심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공부하는 사람들을 생각해 줬으니까.
그도 인생에 실패한 적이 있다고 했다. 실패라곤 전혀 모를 줄 알았는데 말이다. 아주 예전에 행시에 붙고 내쳐서 사시까지 준비했었는데 그때 결혼하고 애도 생기고 해서 그게 잘 안 됐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는 그게 평생의 한이라고도 했다. 그러니까 나 보고는 인생에 후회할 짓 같은 건 남기지 말라고 했다. 한번 포기하면 그게 영원히 남는 거라고.
그러니까 이 망할 놈의 인생은 거지같이 치사한 거다. 딱 한 번. 딱 한 번 실수를 하거나 포기를 하면 그걸로 끝이다. 더러운 껌 같은 게 기억에 엉겨 붙어서 그게 평생 인간을 따라다니는 거다. 밥 먹다가도 문득문득 그때 생각이 나면서 후회가 되고, 죽기 전에도 내가 그때 포기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며 후회나 하다가 죽는 거다. 그런 면에서 인간은 정말 불쌍한 존재다.
하루는 원장에게 물었다. 지금이라도 취미 삼아서 법 공부에 도전해 보시는 건 어때요? 그가 눈을 반짝이면서 내 말을 듣더군. 이 나이에 무슨...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신문 쪼가리를 천천히 넘기는데 분명 입꼬리가 히죽 올라가 있었다. 아마 상상만으로도 좋았나 봐. 그게 뭐가 좋다는 건진 모르겠지만.
가끔 원장의 아들이 독서실에 원장을 대신해서 나왔다. 원장이 아프거나 하면 대타를 하는 거였는데, 나랑 나이도 비슷해 보였다. 담배를 피우다가 얘기를 들어보니, 자기는 아버지가 법대를 가라고 해서 법대를 갔다가 도저히 법 공부가 하기 싫어서 4년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놀았다고 했다. 그러고 대학을 졸업하니까, 아버지가 로스쿨에 가라고 했는데 자기는 그게 또 싫어서 비행기 조종 학교 입학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멋진 녀석이라고 생각했다. 얼굴도 반지름 하고 덩치도 좋고 말이다. 그리고 그가 부러웠었다. 결국에는 그는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걸 기어코 찾아냈으니까 말이다. 나는 그러지는 못했지만. 그가 언젠가는 하늘을 날며 독서실 위를 지나갈지도 모른다. 그러면 창문 밖으로 비행길 조종하며 아래를 내려다볼지도 모르겠지. 아버지. 그때 아버지 말 안 들길 잘했어요.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고 말이다.
아무튼, 나는 지금 그 독서실을 나와 종로의 새 독서실로 가는 중이다. 아까, 원장에게 독서실을 새로 알아보겠다고 말을 했다. 사실, 나는 얼마 전부터 도저히 자리에 앉아있을 수가 없는 상태다. 친구들은 다 취업하고 시험 붙고 그러고 있는데 나만 자꾸 떨어지니까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새로운 곳에 가서 새롭게 시작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운이 좋다면 나랑 비슷한 사람을 만날 수도 있고 말이다. 그래서 원장에게 독서실에 짐을 빼겠다고 말을 했다.
처음엔 원장이 나를 다독이면서 잘 타이르더니, 나중엔 포기를 하는 것 같았다.
“지금 포기하면 영영 안 되는 걸세.”
짐을 싸 들고 독서실을 나서려는데, 원장이 유리 벽 너머에 앉아서 말했다. 나는 그에게 고맙노라고 말하고, 그간 알게 모르게 신경 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과 이곳을 떠나서도 반드시 열심히 공부해서 꼭 이곳에 인사드리러 돌아오겠다고도 대답했다. 그리고 이곳을 떠나는 것은 순전히 내게 새로운 자극이 필요해서이지, 결코 다른 서운한 점이나 그런 게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고도 말했다. 그러곤 현관을 나서며 뭔가를 더 덧붙여서 말하려다가, 그게 다 쓸데없는 짓인 것 같아 그냥 신발을 구겨 신고 현관문을 나섰다.
밖에는 비가 죽죽 떨어지고 있었다. 으슬으슬 추워지는 게 옷을 너무 얇게 입고 나온 모양이었다. 맨날 담배를 피우던 담벼락에 기대서 빗물이 독서실 건물 벽을 적시는 걸 보았다. 어딘가를 떠날 때에는 꼭 그렇게 해야 정말로 떠난다는 게 실감이 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뭔가 두고 온 게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조금 쓸쓸해진다. 담배를 두 개비째 피우며 독서실 건물을 보는데, 원장이 양손에 커다란 쓰레기 봉지를 들고 건물 유리문을 어깨로 밀고 나오려는 게 보였다. 나는 얼른 다가가서 열린 문을 잡아 주려고 했다. 그런데 그 인간이 내가 다가가니까 좁은 틈으로 몸을 밀치고 빠져나오더니 나를 본 척도 않고선 쌩 쓰레기장 쪽으로 사라져 버리는 거다. 마치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게 상장을 받으러 가는 것처럼 급한 일이라도 되는 양 말이다. 나는 그 길로 종로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비가 거지같이 퍼붓고 있었다. 종각역 3번 출구에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