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방은 나올 때와 마찬가지였다. 구겨진 이불. 꽁초가 가득한 페트병. 구멍에서 새어 나온 얼룩. 나는 방의 불을 켜고 안으로 들어가 벽에 몸을 기대었다. 맞은 편엔 검은 곰팡이가 벽의 한 면을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처음 놈이 찾아왔을 때 그것은 엷고 푸른색을 띠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나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그대로 두었다. 놈은 시간이 지날수록 넓고 짙게 퍼지더니 나중엔 짙게 변했다. 죽은 모기의 피가 쓸려 그것은 이제 붉은 색 눈이 생겼다. 사납게 일을 벌리고 남자가 소리치고 있다. 내가 그것을 없애려 짓문질렀기 때문이다. 남자는 화가 나 있다. 나에게 말을 건다.
페트에 재를 떨구고 연기를 가뒀다. 연기가 사라졌다. 나는 잠이 들었다.
탕탕.
홍두가 왔나 보다. 나는 바닥을 짚고 일어나 현관문을 향해 걸어갔다. 문을 열었다. 홍두가 앞에 있었다. 홍두가 앞소매로 김이 맺힌 안경을 닦았다. 홍두가 들어왔다. 이마에 얇은 머리카락이 붙어 있었다. 홍두가 물었다.
"니 잤나?"
"응.“
"니 잘 있나?".
"응 잘 있지."
내가 대답했다.
"니는?“
내가 물었다.
"머 잘 있지. 머."
홍두가 대답했다.
나는 바닥에 널브러진 옷가지와 맥주캔을 밀쳐내고 홍두에게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홍두가 주저앉으며 발을 뻗었다. 홍두가 물었다.
"니 머했노?"
"잤다."
"잤나? 그럴 줄 알았다. 잘했네."
홍두가 대답했다.
나는 홍두 쪽으로 빈 병을 밀어주었다. 홍두가 담배에 불을 붙였다. 홍두가 말없이 담배를 피웠다.
"잘 있었나?"
홍두가 다시 물었다.
"응. 잘 있다."
"그래? 그럼 됐노."
홍두가 재를 털었다.
나는 냉장고로 가서 커다란 콜라병을 가지고 와 홍두에게 주었다.
홍두가 마개를 열고 콜라를 마셨다.
나도 담배를 입에 물었다.
"거 영재 갸는 우예 됐나 아나?"
홍두가 물었다.
나는 잘 모른다고 대답했다.
"취업한다고 가더만 취업 됐노 우예 됐노. 와 연락이 없노."
나는 잘 모른다고 다시 대답했다.
"와 말이 없노."
나는 잘 모른다고 다시 대답했다.
"갸는 우예 지내는지 아노? 거 너 후배. 같이 공부하던 아."
잘 모른다고 다시 대답했다. 홍두가 불을 끌어당겼다. 홍두의 볼이 불어났다. 홍두가 연기를 뱉었다.
"니 가 아나? 승미이. 내랑 같이 공부하던 아. 갸 됐다."
"잘 됐네."
"그래, 그렇지 머. 잘 됐노."
홍두가 재를 털었다.
우리는 말 없이 담배를 피웠다. 연기가 가득 찼다.
"니 우애 지내노?"
홍두가 다시 물었다.
독서실을 옮겼다고 대답했다.
"와? 어데로 옮겼노?"
"종로."
"종로? 와 거로 옮겼노?"
나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모르노?"
그냥 옮겼다고 다시 대답했다. 홍두가 더는 묻지 않고 페트를 들어 콜라를 마셨다. 나는 홍두를 바라보았다.
"니 우얄래?"
홍두가 물었다.
"뭐가?"
"열심히 해라 인마."
나는 알았다고 대답했다.
홍두가 말했다.
"내 이번엔 되야는 데. 우냐노."
"잘 되겠지."
내가 대답했다.
"뭐 재미난 거 없나?"
홍두가 물었다.
재미난 게 있는지 생각을 했다. 재미있는 게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나는 잘 모르겠다고 홍두에게 대답했다. 홍두가 누우며 말했다.
"머하노. 할 긋도 읍꼬. 와 불렀노."
나는 다시 한번 우리가 할 것들을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니 학교 갈래?"
"싫다."
"머 물래?"
뭘 먹고 싶냐고 홍두에게 물었다. 홍두가 고민을 하다가 됐다고 대답을 했다. 홍두가 누워서 발을 버둥거렸다.
"이제 머하노?"
홍두가 물었다.
나는 그에게 대답하지 못했다.
홍두가 팔을 베며 말했다.
"머하노. 나 발표 때까지 암 것도 모하는데.“
홍두는 2차 시험을 치르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험 끝나면 머하노. 할 끄도 읍꼬 만날 아도 없노."
홍두가 발을 다른 발에 올리며 말했다.
"우야노."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현정이 누나. 머 하는지 니 아노?"
나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그 누나 이뻤는데."
그랬다고 나는 대답했다.
"어데 취업했나. 남자친구 있겠지 머."
나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홍두가 다시 담배에 불을 붙였다. 나는 빈 패트병을 홍두에게 다시 밀어주었다.
"니 종로라?"
나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거 사람 안 많노? 사람 많을 낀데."
나는 그런 것 같다고 대답을 했다.
"우리 거 가 볼래?"
나는 가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벽에 등을 기댔다. 나는 검은 곰팡이를 보았다. 남자가 머리칼을 날리며 입을 벌리고 있었다. 남자의 눈은 비어 있고 붉었다. 남자가 소리를 치고 있다.
홍두가 누워 핸드폰을 꺼냈다. 홍두가 말했다.
"내 2차 커트 69점이라는 썰도 있고, 73점이라는 썰도 있다. 닌 우얄꺼 같노?"
나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여태껏 커트가 70점 이상인 적은 없었다. 근데 73점이라고 말하는 놈들은 지들이 안될 것 같으니까 그래 말하는 그다. 안 그노?"
나는 그럴 것 같다고 홍두에게 대답했다.
"그니까 커트가 70점 이상인 적은 한 번도 읍따. 안 그노?"
나는 그럴 것 같다고 대답했다.
"맞제?"
"응."
홍두가 핸드폰을 보다가 다시 말했다.
"이건 뭐 시험이 끝나도 멀 하지를 모하노. 시험 떨어지면 내 좆된다. 떨어지면 우야노."
나는 괜찮을 거라고 말했다.
"진짜가?"
나는 진짜일 거라고 홍두에게 말했다.
홍두가 다시 폰을 보았다. 우리는 말이 없었다. 연기가 가득했다. 담배 국물이 페트병에서 흘렀다. 나는 등을 벽에 더욱 기댔다.
"니 괘안나?"
홍두가 물었다.
"응."
내가 대답했다.
홍두가 다시 핸드폰 속을 들여다보았다. 홍두의 핸드폰 속을 나는 벽에 기대 볼 수가 없었다. 홍두는 다리를 흔들다 가래침을 병 속에 뱉다 콜라를 마셨다. 나는 홍두의 폰 속이 궁금했지만 나는 어떤 것도 홍두에게 물을 수가 없었다.
"니 괘안나?"
홍두가 다시 물었다.
나는 응 이라고 다시 홍두에게 말했다.
홍두가 다시 폰을 들여보았다. 나는 볼 수 없었다.
"몰래."
홍두가 말했다.
"우예 되겄지."
홍두가 다시 말했다.
"우예 안 되겄노."
홍두가 다시 말했다. 그래, 라고 나는 홍두에게 말을 할까 아니면 모른다, 라고 말을 걸까 아니면 그래, 라고 말을 할까, 하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이제 어떻게 하냐고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냐고 나는 이제 어떻게 돼야 하냐고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냐고 폰을 보고 있는 홍두에게, 나는 이제 어떻게 하냐고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냐고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되는 거냐고 홍두에게 묻고 싶었지만 나는 묻지 않았다.
"니 와그노?"
홍두가 물었다.
"응?"
"니 와그는데?"
홍두가 다시 물었다.
응, 이라고 대답을 하려고 하는데, 응, 이라고 대답을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으며, 응, 이라고 대답하지 않는 것과 대답을 하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겠으며, 또 아무 차이도 없는 것과 아무 차이가 있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겠는지, 나는 점점 더 알 수 없게 되고 알 수 없게 되는 것이 무서워 난.
“와 그노.”
응, 나는 대체 왜 이런 거냐고, 응, 아니 대체 나는 왜 이런 거냐고, 응 아니 대체 왜 그런 거냐고, 응 아니 그냥 홍두에게 묻고 싶지만, 응 아니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데, 응 아니 그냥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고, 응 아니 그냥 나는 아무 것도 잘 모르겠다고, 응 아니 그냥 난 뭐라고 해야 하냐고.
"니 괘안노?"
아니, 나는 괜찮지 않다고, 아니 나는 괜찮고 싶다고, 아니 나는 괜찮고 싶지 않다고, 아니 나는 괜찮고 싶지 않지 않다고, 아니 나는 괜찮고 싶다고. 홍두에게 말을 하지를 못하고 떨지를 못하고, 니 개안나, 아니 나는 괜찮지 않다고, 아니 나는 괜찮지 않은데, 아니 나는 괜찮고 싶지 않다고, 아니 나는 괜찮고 싶다고, 아니 나는 잘 모르겠다고,
“개안나?”
아니 나는 괜찮지 않다고 아니 나는 그냥 괜찮고 싶다고. 말이 나는 하고 싶은데, 총무며, 물이며, 새며, 독서실이며 그에 대한 모든 것들이, 대체 나와 무슨 상관이냐고, 그것들이 대체 나와 무슨 상관이냐고, 그것들이 나와 상관없는 것이 무슨 상관이냐고. 그럼 나는 무엇을 해야 하냐고, 나는 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냐고,
대체 나는 무엇과 무엇에 상관이 있는 거냐고, 나는 홍두에게 묻고 싶지만 묻지를 못하고.
검은 곰팡이가 나를 보고 있었다. 검은 곰팡이는 나였는지도 모른다. 검은 곰팡이는 나를 죽일지도 모른다. 나는 검은 곰팡이를 죽이려 했다.
아니 나는.
홍두가, 나는 나의 팔을 세게 잡았다. 몸이 흔들릴 수록 팔을 더욱 세게 쥐었다. 나는 나를 감쌌다. 나의 어깨가 흔들렸지만 나는 나의 팔을 더욱 세게 안았다. 내가 흔들릴 수록 나는 나를 더욱 세게 잡았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내가 홍두에게 말했다.
개안타 개안타.
나는 나를 잡았고 홍두가 나를 잡았다.
개안타 개안타. 홍두가 내게 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홍두의 말을 듣고 있었다. 개안타 개안타. 나는 나를 놓지 않고 있었다.
홍두가 돌아가고 나는 다시 빈 방에 홀로 남았다. 지금 내 앞에는 검은 남자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지금부터 나는 그 사나이를 내 배 위에 올려두고 자세히 들여다볼 생각이다. 그것이 정말 나를 죽이려고 덤벼들던 짐승이었는지 아님 그냥 아무것도 아닌 얼룩이었는진 시간이 지나면 알 수 있겠지.
지금 나는 속이 아주 미식거리고 헛구역질이 나기도 하고 그런다. 아마 그게 내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었기 때문인가 보다.
놈을 죽일 수 있던 건 정말 행운이다. 살다 보면 정말 말도 안 되게 멍청한 일들도 벌어지지만 그게 또 아무 일도 아니게 되고 또 그러기도 하고 그런다. 아무튼 그렇다.
이렇게 내 배 위에 그것을 올려놓고 들여다보다 보면 그것이 정말 내가 아닌 다른 것이었는지 아님 정말 나였는지 나는 분간을 할 수 없게 된다. 그것이 내가 아니라면 내 배 위에서 춤을 추듯 똬리를 틀고 있는 이것을 무엇이라 해야 하나.
*
여기까지가 내 이야기의 전부이다. 이 미칠 것 같이 재미있고 까무러치게 지루한 이야기를 들려주면 의사는 나에게 안정을 취하라는 말만을 한다. 하지만 나는 이 미칠 것 같이 재미있고 까무러치게 지루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 이야기를 누구에게나 하고 싶어 안달이 나게 마련인 것이다.
이 이야기를 하고 내가 다시는 아프지 않았으면 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너도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왜 속에 있는 재수 없고 불길한 그런 걸 꺼내 놓으면 그게 혹시 볕에 말라 죽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혹 그렇진 않더라고 그걸 표식처럼 이용해 멀리 돌아다닐 순 있다. 넓은 들을 지나야 하거나 멀리 가 보지 못한 데를 헤매야 할 때 서로 휘파람을 불러 주는 거다. 그럼 서로가 어디에 있는진 알 수 있겠지. 그게 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다.
일단 종로에서부터 시작해야겠다.
<끝>
<지금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랜 시간 동안 다듬고 있는 글입니다. 오랜 시간 들여다 보며 오랜 시간 길을 들이다 보니 이제 정말 무엇이 소설이고 무엇이 사실인지를 분간을 할 수가 없게 되네요. 어리숙하고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이는 밤이네요.
위로를 하고 싶어 쓴 글이긴 하지만, 위로를 받고 있는 건 저 자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읽어주셨을지가 궁금합니다. 전달하고 싶었던 것이 얼마나 전달이 되었는지를 모르니까요. 말씀 주시면 다시 또 이 글을 들여다봐야 할 때, 들여다 보고 또 들여다 보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추석 맞으시길. 감사합니다.>